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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에 얻었던 기쁨

by 지나온 시간들

여름이 시작되던 지난 6월 셋째 주 금요일이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전라도 부안에 있었다. 저녁이 다가올 때 다시 청주로 향했다. 그날이 드라마 창작반 첫 수업 날이었다. 금요일 저녁이었고, 부안에서 너무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첫날부터 지각이었다. 6시 30분에 수업 시작이었는데, 도착하고 나니 7시 40분 정도였다. 자기소개 같은 것은 이미 끝난 것 같았고, 한창 수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제일 뒤에 가서 살그머니 앉았다. 첫날부터 이렇게 늦다니 20주 수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우연히 신청한 드라마 수업이었다.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이, 심지어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얼떨결에 신청했었다. 드라마 창작반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눈에 띄었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지원했었다. 드라마라는 새로운 것에 대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텔레비전을 거의 시청하지도 않고, 특히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일 년에 한두 편 볼까 말까 하는 내가 어떻게 드라마 공부를 시작할 생각을 했는지 지금 돌아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드라마라는 것이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첫 수업부터 하루 종일 운전을 하다 와서 그런지 너무나 피곤했다.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시는 모습에 내가 과연 이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다. 첫날 수업은 지각을 해서 그런지 마음도 뒤숭숭했고, 몸도 따라주지 않아 그냥 헤매다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드라마 대본을 쓴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태어나서 영화나 드라마 대본을 읽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드라마 쓰는 것에 대한 책이 있는지조차도 몰랐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언가를 시작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주말을 보내면서 드라마 공부에 대해 검색을 했다. 많이 보는 책들을 알아보았고, 일단 그중에 몇 권을 주문했다.


완전 백지에서 시작한 드라마 공부였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공부해야겠다는 마음부터 가졌다. 일단 수업을 열심히 듣고 싶어서 둘째 주부터는 수업이 시작되기 30분 전에 도착해서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능력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니 성실하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후로도 수업 전에 와서 항상 두 번째 줄에 앉았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이 힘은 들지만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수업 시간 내내 배우는 것들이 전부 새로웠다. 아마 그것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드라마에 대해서는 완전 백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새로운 것이 삶의 활력소가 되기 시작했다.


금요일 저녁 시간이 기다려졌다. 일주일이 빨리 지나가기를 마음속으로 원했던 것 같다. 전에는 약속을 주로 금요일 저녁에 잡았지만, 드라마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금요일에는 어떤 약속도 잡지 않았다. 그저 수업 시간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나의 능력은 내가 잘 안다. 드라마를 배우고 공부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지고 드라마 수업 시간에서 조그마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과제도 있고 대본을 쓰는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즐기면서 하기로 했다. 내 실력이야 그대로 나올 테니 거기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내 대본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건 전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갔고 어느새 가을이 왔고, 가을이 깊어져 가면서 순식간에 20주가 지나가 버렸다. 지난 20번의 금요일은 나에게 조그마한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연히 지원한 수업이었지만 좋은 인연으로 남게 되었다. 이제 이번 금요일이 마지막이다. 금요일 저녁에 얻었던 기쁨이 이제는 끝이 나겠지만, 그동안 주어진 기쁨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금요일 저녁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관성의 법칙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적용이 되는 듯하다. 왠지 허전하고 수업이 계속되는 꿈을 꾸게 될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은 인연따라 오고 인연따라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왠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 같다. 이제는 금요일 저녁에 수업을 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그 시간에는 드라마 대본을 쓰는 것으로 그 기쁨을 대신하려고 한다. 내 마음속에서는 드라마 수업이 주는 기쁨이 그렇게 계속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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