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다 보면 가끔 연꽃이 많이 피어있는 방죽을 지나곤 한다. 그리 큰 방죽은 아니지만 예쁜 연꽃이 충분히 많이 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벤치에 앉아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연꽃을 감상하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연꽃의 뿌리는 진흙 속에 묻혀 있다. 우리는 보통 진흙을 더럽다고 생각하곤 한다. 손으로 진흙을 만져보면 끈적끈적하게 묻어나고 왠지 그 속에 온갖 것들이 들어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더럽고 깨끗하다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왜 진흙을 더럽다고 인식하는 것일까? 물론 진흙을 더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으나 아직 나는 그러한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 중에 진흙을 깨끗하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연꽃은 더럽고 깨끗한 것 상관없이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여 예쁜 연꽃을 활짝 피워낸다. 그 연꽃을 보고 우리는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사진을 찍는 것이다. 하지만 연꽃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진흙을 좋다고 해서 만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같은 연꽃임에도 불구하고 위에 핀 연꽃은 아름답다고 하고 그 연꽃을 피워내기 위해 땅으로부터 영양분과 수분을 공급해 주는 진흙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만약 연꽃의 뿌리가 내려진 진흙이 없었다면 우리가 좋아서 사진을 담는 그 아름다운 연꽃은 피지 못했을 텐데도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면이 있지만 좋지 않은 면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처음에 만난 사람이 마음에 들어 좋아하다가, 시간이 지나 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거나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은 면을 경험하게 되면, 그전에 그를 칭찬하던 사람이 그 사람을 더욱 싫어하며 좋지 않은 말을 하곤 한다. 상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인식의 불완전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같은 사람을 놓고 좋아했다가, 싫어했다가, 배려했다가, 미워했다가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는 모르나, 그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면 차라리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연꽃을 본다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연꽃은 위나 아래나 다 하나일 뿐이다. 진흙에 박혀있는 뿌리는 더럽고, 물 위에 피어있는 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뿌리부터 꽃까지 하나의 개체인 연꽃 그 자체인 것이다. 뿌리가 진흙에 박혀있어 더러우니, 뿌리는 버리고 아름다운 연꽃만 따서 집으로 가져간다면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 예쁜 연꽃은 시들어 말라죽을 뿐이다.
나의 인식의 한계가 나의 마음과 주위의 다른 사람과의 아름다운 관계에 파탄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진정 그 사람의 본모습이 아닐 수 있고, 내가 판단하는 그 사람의 어떠한 점이 어쩌면 더 좋은 면을 놓치고 고작 뿌리가 내린 진흙만을 보는 나의 사고의 편협함인 것인지도 모른다.
어떠한 존재건 그 존재의 모든 면과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인식의 한계를 아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연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