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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걸음걸이

by 지나온 시간들

가족이기에 서로의 아픔을 더하고, 사랑을 더하는 것일까? 가족이란 가장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것 또한 현실일지 모른다. 윤대녕의 <빛의 걸음걸이>는 한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세월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이다.


“ ‘엄만 늘 모질게 날 대했지만 이상하게 원망을 해본 적은 없어. 정말 이상하지? 근데 요즘 와서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애’

거기에도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하긴 이유가 있겠지.

‘엄마한테는 내가 제일 가까운 사람였던거야. 살기가 좀 어려웠니. 그래서 속이 상할 때면 날 가지고 괜히 구박하고 그랬던 거야.’

어머니가 죽고 나면 이 사람이 내 마음속 어머니가 되리라. 따뜻한 두부 같은 사람.”


엄마가 나에게 모질게 대했어도 나는 왜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던 것일까?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끝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그냥 나오는 대로 대했던 것일까? 그것이 아픔이 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마음속으로는 그러지 않으려 해도 그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란 커다란 삶의 무게 때문인 걸까?


“언젠가는 햇빛을 받아 누렇게 색이 바래고 두루마리처럼 안으로 말려버릴 테지. 우리들 인생처럼. 그리고 나면 이 집과 함께했던 우리 세월의 기억도 점점 희미해지겠지. 하지만 나중에라도 왠지 너만은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아. 해바라기 밭에서 찍은 사진도 네가 가지고 있다는 걸 난 알아. 어느 여름날 우리는 해바라기 푸른 대궁 사이에 숨어 겁 없이 입을 맞췄지. 너는 그 큰 눈으로 일생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혹은 내가 너를”


함께 했던 그 시간은 영원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을 부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경우 가족의 그 단단한 끈마저 잃고 말 것이다. 그 끈을 놓는 경우 이 세상 그 어디서도 다시는 그러한 끈을 얻지는 못하리라.


모든 것은 마음속에, 그리고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순간을 함께 했었는데 그것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 모든 것을 부인하고 원하지 않더라도 그 함께 했던 시간들은 존재를 넘어 영원할 수밖에 없다.


“ ‘갔어!’

조용히 말해도 될 텐데 그는 굳이 외쳐 말하고 있었다. 이토록 고요한 밤에도 귀가 어두운가. 일어나서 내가 불을 켜려고 하자 그가 내 손목을 차갑게 거머쥐었다.

‘냅두고 나와!’

나는 그에게 손목이 붙들려 방 밖으로 나갔다. 마루로 막 올라서려다 말고 그가 해바라기방에서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네 에미가 갔다고!’

그제야 나는 안방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퍼뜩 깨달았다. 서쪽방과 동쪽방은 아직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가누고 안방으로 들어섰을 때 맨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어머니의 머리맡에 놓여 있는 흰 고무신이었다.”


기쁨과 아픔, 행복과 불행을 함께했던 사랑했던 가족과도 언젠가는 작별을 할 수밖에는 없다. 그래도 함께 했던 그 순간들은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가족이란 그 끈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존재의 흔적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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