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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다 떠난다

by 지나온 시간들

아파트 옆 길가에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매일 다니는 길이건만 오늘따라 길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노란 은행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떨어진 은행잎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은행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은행잎이 떨어진 것보다 적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저 은행잎도 모두 다 떨어져 버릴 것입니다. 스산한 바람에 집으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오래도록 머물다 가기를 바랐습니다. 내게 왔던 그 모든 것들에게 그렇게 소원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만큼 오래도록 머물다 가는 것은 드문 듯합니다.


모든 것은 생겨나서 어딘가로 가고 잠시 머무르다 때가 되면 그렇게 다시 떠나가는 것 같습니다. 내게 오는 것도 그런 것 같고, 저 또한 아마 그럴 것입니다.


영원을 꿈꾼다는 것은 희망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에 희망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아마 그 희망이라는 단어에 속아 그나마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노란 은행잎이 떠나가고 나면 조만간 또 다른 무엇이 찾아올 것입니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눈이 내리겠지요. 그때엔 은행잎이 떠나간 아쉬움을 잊은 채, 하얀 눈을 반길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렇게 머무르다 떠나지만, 그 어딘가에 흔적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모습이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흔적이 모여, 삶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름다운 흔적도 있지만, 아쉽고 미련이 남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잠시나마 나에게 머무르고 있는 것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나에게 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인연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머무르다 떠나가는 것에 대해 미련을 가지지 않겠습니다. 내가 아무리 소원하고 바라더라도 그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쉽게 떠나갈지라도 그동안 머물렀던 것에 고마워하려고 합니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노란 은행잎 하나를 주워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속에 넣어 간직하면서 올해의 은행잎의 흔적을 그렇게 기억하려고 합니다. 올가을의 있었던 일들도 나의 마음속에 남아 있겠지만, 노란 은행잎과 함께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내일 퇴근하는 길에 은행잎 하나 주워오려고 합니다. 아마 내일까지는 은행잎이 거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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