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에게 있어 환희는 그의 전부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사랑하는 존재였다. 병원을 향하는 동안 아들의 목소리가 귀에 계속 맴돌았다. 사실이 아닐 거라고,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환희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십 년도 살지 못한 그의 아들은 눈을 감은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수련의가 우현에게 다가왔다. 환희가 응급실에 왔을 때는 이미 심장은 멈추어 있었다고 했다. CPR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사고를 낸 트럭 운전사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교통사고가 어떻게 났건, 사고를 낸 운전사가 처벌을 받건, 환희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환희를 화장하던 날 함박눈이 쏟아졌다. 화장터를 가는 길이 한참이나 막혔다. 환희가 우현의 옆을 떠나기 싫었던 것인지, 우현이 환희와 작별하는 시간이 미루어지기를 바랐던 것인지 하늘은 그들의 이별을 잠시나마 늦추어주는 것 같았다. 화장터에 도착했을 때도 눈은 멈추지를 않았다.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세상이 마치 천국 같았다. 환희가 살아 있었다면 너무나 즐거워할 그런 모습이었다.
우현은 유리창 너머에 놓인 조그마한 관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 놓여 있었다. 환희가 들어 있던 관이 붉은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우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옆에 있던 아내인 서연은 흐느껴 울었고 나중에는 통곡으로 변해 버렸다.
화장이 끝난 후 환희를 담은 납골함이 우현의 손에 주어졌다. 우현과 환희가 평상시에 즐겨 가던 집 근처 사찰에 그것을 맡겼다. 대웅전을 나오며 신발을 신을 때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 소리에 풍경소리가 들렸다. 청아한 그 소리에 환희의 목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함께 하려 해도 함께 할 수 없는 시간만이 주어질 것이기에 그 시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떨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계속 내리던 눈이 조금씩 멈추려 하고 있었다. 민석의 마음속에는 시간도 멈추는 것 같았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우현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마치 그림자 같았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도 조용히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하는 아이였다. 부모 속을 크게 썩인 적도 없고, 친구들과 다투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상위권에 들어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에 취업을 했고, 그곳에서 10년을 일해 왔다. 환희가 죽은 지 이제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일을 끝내고 우현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약속했던 곱창집에 들어가니 이미 민석이는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현아, 여기”
“민석이 오랜만이네. 별일 없었지? 호철이는 아직인가 보네.”
“아, 저기 온다. 쟤는 맨날 지각이야.”
호철이는 연예인 같은 패션으로 친구들이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민석이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호철이에게 한마디 했다.
“너는 지각 좀 안 하면 어디가 덧나냐? 맨날 다른 사람 기다리게 하고. 얼른 와, 앉어.”
“오, 그래, 친구들 진짜 오랜만이다. 우현아, 너는 학교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 힘들지 않어? ”
“열심히 살긴 누가?”
“누구긴 누구야, 너지. 너같이 성실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냐? ”
“오랜만에 맞는 말 한다. 그렇게 살다 탈 날까 겁나.”
“잔소리 그만하고 이거나 먹자.”
“야, 근데 민석이 너 얼굴이 좀 어두운 것 같다. 무슨 일 있어?”
“아, 별일은 아닌데, 혹시 너희 우찬이 연락되냐? 전화를 해도 안 받고.”
“왜, 너는 걔가 그립냐. 맨날 만나니까 난 안 그립구?”
“아이, 자식. 농담이 아니라, 내가 그 녀석에게 돈을 좀 빌려줬거든. 근데 갚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되네.”
“그럴 돈 있으면 나를 좀 빌려주지. 근데 얼마나 빌려줬는데?”
“삼천만 원”
“뭐? 삼천만 원? 그렇게나 많이? 미친 거 아냐? 근데 사실 그놈 나한테도 돈 빌려달란 적 있었는데.”
“그래? 호철이 넌 그래서 빌려줬어?”
“빌려주긴? 내가 돈이 어디 있냐? 나도 빌려줄 수 있는 돈 좀 있으면 행복하겠다. 그런데 그 자식 끈질기게 빌려달라고 하더라. 나중엔 내가 아예 전화도 안 받았어.”
“나도 우찬이한테 돈 빌려줬는데.”
“우현이 너까지? 넌 얼마나 빌려줬는데?”
“오천만 원”
“얘 봐라. 한술 더 뜨네. 그렇게 큰돈을 뭘 믿고 빌려줘?”
“고등학교 때 우찬이하고 많이 친했잖아, 옆집에 살았고, 하도 힘들다고 해서 빌려줬는데. 6개월만 쓰고 갚는다고 했는데.”
“야, 너네들 조심해, 무슨 일 있을 줄 알고 그렇게 돈들을 빌려주냐?”
우현이는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꺼내 우찬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만 갈 뿐이었다.
“그 녀석 전화 안 받냐?”
“응, 신호는 가는데 안 받네.”
“걔한테 무슨 일 난 거 아냐?”
“에이, 어떻게 되겠지, 오랜만에 만났는데 기분 깨지 말고 술이나 먹자.”
우현이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자꾸 환희에 대한 생각이 나곤 했다. 이제는 집에 들어가도 환희가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우울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듯했다.
늦게까지 술을 마셨지만, 우현은 새벽 5시 30분이 되자 습관처럼 눈이 떠졌다. 수영가방을 챙기고 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출근하기 전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수영해온 지 벌써 8년째였다. 옷을 갈아입고 수영장에 들어가니 수영장 내 커다란 벽시계가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체조를 하고 배정된 레인으로 가서 같은 반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일상은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 환희가 없는 세상도,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고,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이 없는 마당에도 우현은 예전처럼 수영을 하고 있었다. 물속에서도 우현은 환희 생각이 났다. 갑자기 자신에게 환희가 반갑다고 달려들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