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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by 지나온 시간들

초등학교 미술 시간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진흙을 준비해 오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날 학교 앞 문방구에서 진흙을 사서 학교에 갔습니다. 미술 시간이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준비해 온 진흙을 꺼내서 원하는 아무것이나 만들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선생님께서 만들 것을 지정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지정해 주는 것 없이 아무것이나 만들라는 말씀에 막상 만들기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만들까 고민을 하다 한참 시간이 지났던 것 같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들은 이미 진흙으로 만들기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아 무엇이라도 하나 결정해서 만들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제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였습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매일 강아지와 노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아무 형태도 없던 진흙을 가지고 우리 집 강아지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미술에는 소질이 없어서 진흙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몹시도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우리 집 강아지를 생각하며 정성껏 진흙으로 만들기를 해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솜씨도 없던 나의 손에서 우리 집 강아지의 모습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와 몸통 그리고 네 개의 다리와 꼬리까지, 제법 제가 제일 사랑하는 강아지의 형태가 갖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몰입을 하며 진흙과 씨름을 하고 났더니 제 책상 위에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우리 집 강아지가 고개를 들어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다 만들어진 강아지를 보니 저의 마음도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진흙에서 제가 제일 사랑하는 강아지가 태어났습니다. 비록 생명은 없으나 저의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또 다른 강아지 한 마리가 태어났던 것입니다. 처음의 진흙 덩어리는 비록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이제는 사랑받는 저의 귀중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으니 가능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 자신 또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별것도 아니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미래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꿈꾸는 그 모든 것을 실현시킬 수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비록 젊었을 때의 원대한 꿈이나 소망을 이루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이룰 수 있는 것은 많을 것입니다. 단지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스스로 용기를 내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세월에 상관없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나의 존재의 의의는 지금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나를 진흙 덩어리로 생각해 아무것도 아닌 나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오늘도 참된 나의 모습을 위해 하나하나 빚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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