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발을 들여놓은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좋은 분들을 만나 인연을 이어왔다. 시, 수필, 소설을 쓰는 분들과 많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적게는 한 달에 한두 번씩 만나며 자신의 글을 나누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인연이라는 것이 쌓이면 또 다른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어쩌다 우연히 편집위원을 맡게 된 지 일 년이 다가온다.
사실 나는 편집위원이긴 하지만 하는 일은 별로 없다. 편집 회의할 때 가서 조용히 앉아있다가 의견 몇 개 말씀드리고 맛 나는 음식을 먹으면 된다. 편집주간과 편집장이 있어 그분들이 거의 모든 일을 하신다. 편집본이 나오면 다시 모여 이야기하고 교정을 보면 그것으로 내가 할 일은 끝이 난다. 2차 교정까지 마치고 나면 멋진 모습의 책이 되어 나온다.
어제 “청주 직지 예술” 출간기념식과 신인문학상 시상식이 청주 예술의 전당 대강당에서 있었다. 청주 직지 예술은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을 담으려는 취지로 발간하는 잡지이다.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일 년에 두 번 발간하고 있다. 비록 지방에서 발간하는 잡지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모두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발간하고 있다.
기념식이 오후 6시였는데, 수업을 5시에 끝내고 출발하려 하니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가도 1시간이 훌쩍 넘게 걸리는데 도로에 자동차들이 평상시의 절반의 속도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빨리 가도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아예 마음을 비웠다. 끝나기 전에 도착이라도 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사고라도 나지 않기를 바라며 운전을 했다.
갈수록 눈은 점점 더 심하게 쏟아졌고 앞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편집위원이 빠지면 안 될 것 같아 애를 썼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행사가 다 끝나 식사 시간에라도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함박눈이 이렇게 많이 오다니 참으로 이상했다. 하지만 나는 눈을 좋아한다. 비록 운전하는 것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왕 오는 눈을 내가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냥 눈을 보고 즐기면서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느긋해졌다.
간신히 쏟아지는 눈을 헤치고 행사장에 도착하니 예상한 대로 기념식은 이미 끝나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신 회장님은 나를 불러 올해 내가 출간한 책에 대한 기념패를 주셨다. 행사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챙겨주시는 것에 대해 죄송함과 고마운 마음이 밀려왔다.
새로 출간된 “청주 직지 예술 12호”를 받고 보니 너무 예뻐 보였다. 비록 내가 한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여러 좋은 분들과 회의도 하고 교정도 보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보니 나름대로 보람이 느껴졌다. 단체 기념사진도 찍고 마음이 따뜻한 분들과 인사를 하고 뷔페를 먹으며 그간 지낸 이야기도 하니 눈 속을 헤치고 온 것이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년 1년만 더 하고 편집위원을 그만두겠지만, 맡고 있는 동안에는 조그마한 힘이라도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앞선다. 편집위원이 해야 할 일은 지난번에 발간한 것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새로운 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번에 발간한 것이나 이번에 발간한 것이 별 차이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편집 회의에서 항상 하는 이야기가 지난번에 발간한 것을 어떻게 더 나은 모습으로 새로 만들어 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다음 호에는 내가 문학비평을 써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겨울에 비평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있어 행복하다. 내년에 두 번 더 발행하고 나면 더 멋진 잡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록 지방에서 발간하는 잡지라 할지라도 수준 높은 모습으로 더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내년에 임기가 끝나면 미련 없이 그만두려 한다. 누군가가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좋지 않음을 알기에 더 훌륭한 분이 더 멋진 책을 만들어 낼 것이다.
어제 모든 순서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새로 나온 책을 몇 번이나 넘겨보았다. 평생 과학만 하다가 문학을 하는 재미가 이렇게 좋은 것인 줄은 미처 몰랐다. 이제 과학뿐만 아니라 문학도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버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