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은 블랙홀 열역학에서 가장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현대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두 분야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입니다. 양자역학에서 수소 원자에 관한 연구는 양자역학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기반을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블랙홀은 현대 우주론에 있어 양자역학의 수소 원자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블랙홀을 알면 알수록 우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호킹의 업적이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소설 같았던 블랙홀의 존재를 우리 곁으로 오게 만들었습니다.
스티븐 호킹은 1942년에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호킹이 8살 되던 해 그의 가족은 런던에서 조금 떨어진 세인트 앨번스로 이사를 갑니다. 호킹은 그곳에서 세인트 앨번스 소녀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학교은 여학교였지만, 소년들이 10살까지는 다닐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호킹이 11살 되던 해 그는 세인트 앨번스 학교로 전학합니다. 호킹은 17살에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합니다. 당시 그는 물리학 시험에서 성적이 너무 좋아 시험관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호킹은 물리학보다는 수학을 더 좋아했고, 수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옥스퍼드 대학에는 수학교수가 없어 호킹이 수학을 전공할 수 없기에 물리학을 선택합니다. 그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어렸고 왜소했으며 내성적이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첫 1년 반 동안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지내면서 대학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2학년 중반 이후 호킹은 학생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을 하였고, 이런 노력으로 인해 그는 옥스퍼드 조정팀에 키잡이로 들어가게 됩니다. 조정 팀은 보통 체격이 좋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키잡이는 노를 젓지 않기 때문에 왜소한 학생을 원했고 호킹은 팀 리더와도 비슷한 키잡이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조정 팀과 연습을 할 때 하루 여섯 시간씩 보트를 탔고, 물리학 수업 시간을 빼먹기도 했습니다. 호킹은 옥스퍼드에서 자연과학 분야의 최우등 학위를 받고 졸업을 합니다. 이어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시아마 교수와 우주론과 일반 상대성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합니다.
호킹이 옥스퍼든 대학교 졸업반이었을 때 그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점점 더 심해져 갔습니다. 케임브리지에 와서도 좋아지지가 않자, 그의 어머니는 호킹에게 의사의 진료를 권합니다. 호킹은 불행히도 1962년 루게릭 병으로 진단을 받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남은 삶이 1~2년 정도라는 시한부 선고를 합니다.
이후로 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꾸어 나갔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다하려 마음을 먹고 현대 우주론의 집중적인 연구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의 근육은 점점 마비되어 나중에는 신체의 모든 근육의 기능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말과는 달리 그는 55년을 더 살 수 있었고 현대 우주론에 있어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와 함께 연구했던 로저 펜로즈는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호킹은 2018년에 사망했는데, 살아 있었다면 펜로즈와 함께 노벨상의 영예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운명은 정말 너무나 기구했지만, 자신의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으로 그는 충분히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호킹은 1964년에 있었던 공개 강연에서 케임브리지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을 공개적으로 비판합니다. 그는 블랙홀에 적용되던 특이점을 우주 전체에 적용해서 우주가 팽창하고 일반 상대성 이론이 참이라면 이 우주 전체가 하나의 특이점에서 탄생해야 한다는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는 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몇 년 동안 호킹은 이 주제에 대한 연구에 몰두합니다. 호킹의 이러한 연구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으로 시작해서 블랙홀로 종말을 맞는 것이었습니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킵 손과 러시아의 물리학자 야콥 젤도비치와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호킹은 블랙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 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을 부분적으로 결합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합니다. 이 두 이론을 결합시켜서 블랙홀의 특성을 파악할 경우에는 블랙홀이 빛을 포함한 모든 물체를 삼켜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사에너지를 방출한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블랙홀과 우주론에 대한 호킹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됩니다.
이후 호킹은 양자 물리학과 상대성이론의 부분적인 결합을 우주의 빅뱅에 적용해서 백뱅 초기에는 100톤이 넘는 무게를 지닌 작은 소립자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입자는 양성자 정도로 작았지만 엄청난 질량에서 비롯되는 중력 때문에 일종의 미니 블랙홀의 역할을 수행하는 입자였습니다. 이후 과학자들은 이 호킹 입자를 검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입자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호킹은 1975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응용 수학 및 물리학과 교수가 됩니다. 이어 1979년에는 루카시안 석좌교수가 됩니다. 루카시안 석좌교수는 아이작 뉴턴을 비롯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과학자들이 거쳐 갔던 자리였습니다. 이즈음 호킹의 건강은 다시 악화되었고 호킹은 집에 상주하는 간호사를 두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호킹의 연구 스타일도 변해서 이전처럼 수학적인 증명을 추구하기보다는 더욱 직관적이고 사변적인 접근을 선호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신체 그 어떤 부분도 사용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981년 호킹은 우주에 시작과 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는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제임스 하틀과 함께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하틀-호킹 상태’라는 모델을 제시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은 거꾸로 가는 시간의 개념에 입각해서 한 입자의 특정 상태가 시공간에서 하나의 궤적만을 갖고 거기에 이른 것이 아니라, 가능했던 모든 궤적을 더해서 그 상태가 되었을 이론적인 가능성을 제시했는데 호킹과 하틀이 이 아이디어를 우주 전체에 적용했던 것입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특이점 같은 한 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한 점으로 사라질 것도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우주와 그것 속에 있는 모든 물질은 경계가 없는 양자적 상태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호킹과 하틀의 모델 이전에 우주는 무한히 오래되었거나 빅뱅처럼 특이점에서 출발했다고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호킹은 우주가 무한히 오래된 것은 아니면서도 특이점을 상정하지 않아도 되는 제 3의 모델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이 모델에 의하면 빅뱅은 마치 지구본 위의 북극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북극이라는 것은 실재하고 여기에서 모든 경도가 출발하지만 이 지점이 특이점은 아닌 것입니다.
북극을 거쳐서 다른 지점으로 가는 것이 가능하듯이 우주의 시공간도 비슷한 의미에서 경계가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호킹의 주장이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북극은 2차원에서 존재하는 극점이지만, 우주의 빅뱅은 4차원에서 존재하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호킹은 1974년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고 왕립학회에서 아인슈타인 메달과 휴즈 메달을 받았습니다. 1980년에는 커맨더에 임명되었고, 세기의 인물에게 주어지는 명예훈장도 받았습니다. 2009년에는 미국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 훈장도 받았습니다.
그가 쓴 “시간의 역사(The brief history of time)”는 전 세계적으로 천만 권 이상이나 팔린 과학 분야 초베스트셀러입니다. 두껍지 않지만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휘어진 시공간, 양자장 이론, 블랙홀 열역학 등 현대물리학의 가장 첨단지식으로 우주와 시공간에 대한 깊은 탐험을 시도합니다. 시간의 역사는 우주의 역사이며 우주에 대한 이해는 시공간과 물질에 대한 이해라 할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인 허블의 관측은 우주가 대폭발로 불리는 무한히 작고 조밀했던 시기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과학의 모든 법칙,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는 모든 능력이 없어져 버립니다. 만약에 이 시기 이전에 사건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건의 존재는 관측될 수 있는 결과를 낳지 않으므로 무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대폭발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 이전의 시간이란 정의할 수 없습니다.
상상 속에 있던 우주를 엄밀한 과학의 분야로 이끌어낸 것은 1915년에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론이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1929년 캘리포니아의 윌슨산 천문대에서 외부 은하의 적색편이 관측을 통해 알아낸 허블의 법칙은 현대 우주론의 가장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는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허블의 법칙이 말하는 핵심은 우주는 정적인 것이 아닌 동적이라는 것입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수만 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정적 우주론의 세계관은 이 법칙으로 말미암아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주는 시간의 역사에 따라 그와 함께 진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우주의 시작이 바로 시간의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호킹에 의하면 과학의 궁극적 목적은 우주 전체를 기술하는 하나의 이론을 마련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과학자가 실제로 따르는 방법은 문제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려주는 법칙이 있습니다. 둘째로는 우주의 시초 상태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이 첫째 문제만을 다루어야 하며, 우주의 시초에 관한 문제는 형이상학이나 종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즉 신은 전능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우주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은 우주의 발전과정도 아주 마음대로 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측된 우주는 어떤 법칙에 따라 극히 규칙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시초를 지배하는 법칙도 있음직한 것입니다.
시간의 시작과 함께 우주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변화해 왔다. 우리는 그것을 우주의 진화라 표현합니다. 그 진화를 지배하는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현재 우주론의 과제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우주의 기원에 대한 문제도 이제는 과학의 영역으로 편입시켜 인류는 신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도전입니다. 인간의 우주에 대한 앎의 영역이 커질수록 인류 존재의 영역도 함께 커지는 것입니다. 우주의 진화의 법칙, 우주의 기원에 대한 법칙을 찾고자 인류는 계속해서 위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킹의 주장에 의하면 특이성 정리가 실제로 가리키는 것은 중력장이 너무 강해서 양자적인 중력 효과가 중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고전 이론은 이제 우주를 표현하는 좋은 기술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력의 양자론을 써서 우주의 극히 초기 단계를 논해야 합니다. 양자론에 의하면 보통의 과학 법칙이 어디서나 즉, 시간의 시초를 포함해서 성립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특이성 때문에 새로운 법칙을 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과거에 밀도가 무한히 큰 상태가 필연적으로 있었으며, 이는 사실상 시간의 시초에 해당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만약 우주 전체가 다시 수축을 한다면, 미래에 또 하나의 밀도 무한대의 상태가 있고 시간의 종말을 이루게 됩니다. 우주 전체가 수축하지 않더라도 구역적으로 수축하여 블랙홀을 만드는 곳에는 특이성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특이성은 그 블랙홀로 빠져드는 사람에게 시간의 종말이 될 것입니다.
블랙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특이점 때문입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꿈꾸었던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힘을 통일하려는 것과 맞물려 있습니다. 아직 그것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아인슈타인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특이점이 존재하는 블랙홀에서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시간의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역사는 우주와 함께 시작되었으니, 우주와 함께 끝날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블랙홀에 대한 천문학적 관측은 라인하르트 겐첼과 앤드리아 겐즈가 선구적이었습니다. 1930년쯤,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계 중심에서 강한 전파가 나오는 것을 관찰합니다. 전파의 근원은 궁수자리였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초, 퀘이사의 발견으로 물리학자들은 큰 은하 중심에 초대형 질량의 블랙홀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960년대 말, 은하의 별들이 이 궁수자리 A를 따라서 도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90년대에 더 큰 망원경과 장비로 인해 겐첼과 게즈는 우주의 먼지 구름을 넘어 궁수자리 A를 보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망원경이라도 지구에서 관찰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대기가 렌즈처럼 빛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30년 동안 센서와 광학 기술을 개선하며 이미지 해상도를 천 배 넘게 향상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별들의 위치를 훨씬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은 30개 정도의 밝은 별을 추적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별들이 중심과 가까울수록 특정한 궤도를 따라 훨씬 빠르게 도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은하 바깥쪽에 있는 태양은 한 바퀴를 도는데 2억 년이 걸리는데 S2라는 별은 16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로 인해 2008년 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이 태양계 크기이며 우리 태양의 약 4백만 배의 질량을 가진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호킹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누구보다도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삶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충분히 살았습니다. 현대 우주론에 대한 그의 업적은 실로 뛰어나고 놀랍지만, 그의 삶은 그의 업적보다 훨씬 더 빛나고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밤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그는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항상 우리에게 밝은 빛을 비춰 주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남은 많은 말 가운데 두 가지만 아래에 인용해 보겠습니다.
“However difficult life may seem, there is always something you can do and succeed at. (인생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 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It would not be much of a universe if it wasn’t home to the people you love.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면, 우주는 그리 대단한 곳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