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고체물리학 분야의 획기적인 업적 두 가지를 꼽으라면 반도체와 초전도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에 해당하는 물질인 반도체는 외부의 조건에 따라 그 특성이 민감히 변하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초전도체는 글자 그대로 전도성이 특별히 뛰어난 물질 또는 전기저항이 특별히 적은 물질을 뜻합니다. 초전도체와 반도체의 연구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과학자가 바로 존 바딘입니다.
초전도체의 발견은 온네스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네덜란드의 과학자 온네스는 저항과 온도의 관계를 연구하던 중 온도를 절대온도 영도까지 내리면 저항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였습니다. 그는 극저온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여 온도를 절대온도 영도에 가깝게 내릴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하여 수은의 저항이 절대온도 영도에 가까울 때 저항의 모습을 관찰하던 중 절대온도 2.4도 근처에서 갑자기 저항이 영이 되는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인류가 최초로 초전도체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초전도는 저항이 영(0)인 물질로서 전도도가 무한대가 되며 우리들의 상식과는 다른 아주 신기한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물질입니다.
이러한 초전도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 이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난제였는데 이는 온네스의 발견 이후 50년이 지나 바딘, 쿠퍼, 슈리퍼가 초전도체의 경우 전자는 짝을 이루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BCS 이론으로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바딘은 1956년 월터 브랜튼, 윌리암 쇼클리와 함께 트랜지스터을 최초로 개발해 반도체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존 바딘은 1908년 미국 위스콘신주 메디슨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존스 홉킨스 의과 대학 1회 졸업생으로서 위스콘스 의과대학의 창립자였습니다. 어머니는 동양 미술을 전공한 예술인이었습니다. 바딘은 위스콘신 대학에 입학하여 전기공학을 전공하였는데 석사학위를 받은 후 피츠버그에 있는 걸프 연구소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1933년 대공황이 발생하자 과감히 일자리를 버리고 프린스턴 대학의 박사과정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고체 물리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금속 내부에서의 전자의 성질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헝가리 출신의 물리학자 위그너의 지도를 받아 1936년 이론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바딘은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밟았고, 1938년 미네소타 대학의 조교수가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워싱턴 시의 해군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어뢰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바딘은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신전화회사의 벨 연구소에 자리를 잡아 연구를 계속하였습니다. 당시 이 회사의 경영진은 통신 시스템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신소재 개발이 필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벨 연구소는 고체 연구부를 독립 부서로 격상시키고 그 밑에 자기, 압전기, 반도체 등의 여러 소그룹을 두는 조직 개편을 합니다. 특히 벨 연구소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면서 여러 학문 분야에 걸친 다양한 인력으로 팀을 구성하였습니다.
이 연구소에서 바딘은 월터 브래튼, 윌리암 쇼클리를 만납니다. 바딘, 브래튼, 쇼클리는 합심하여 게르마늄 반도체의 박판에 수직으로 전기장을 걸어 운반체의 수를 제어하는 방식을 고안하고 이를 보다 보완하여 인류 최초로 pnp형 트랜지스터를 개발하였습니다.
고체에서의 전기전도도는 원자핵의 제일 바깥 궤도를 돌고 있는 자유전자의 숫자가 결정합니다. 반도체에 전지를 연결하면 –전기를 띤 자유전자가 +전극으로 빨려 들어가서 전기가 흐르게 되고, 자유전자가 이동하고 남은 자리에는 +전기를 띤 구멍이 생기게 됩니다. 이를 홀(hole)이라 부릅니다. 홀은 주변에 있는 전자들을 끌어당겨서 안정된 상태를 이루려 합니다. 이때 끌려 들어간 전자가 있던 자리에는 다시 홀이 생깁니다. 결국, 홀이 이동한 셈입니다. 이렇게 전자가 +쪽으로 이동할 때 홀은 –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에 관심을 가졌던 과학자들은 반도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전자와 홀의 수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불순물을 넣어 전자 혹은 홀의 수를 늘리는 방법을 고안하였습니다. 대표적인 반도체인 실리콘과 게르마늄은 4족 원소로서 4개의 최외각 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소와 같은 5족 원소를 섞으면 최외각 전자는 모두 9개가 됩니다. 이 중에서 8개는 안정된 결합을 이루고, 전자 하나가 남게 됩니다. 이 전자는 자유전자로 전기를 운반합니다. 음전하를 띤 전자가 전기를 나른다는 뜻에서 이것을 n형 반도체라고 합니다.
이와 달리 3족 원소인 인듐을 불순물과 섞으면 최외각 전자는 모두 더해도 7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8개의 안정된 결합에서 1개가 모자라기 때문에 그곳에는 홀이 생깁니다. 이 홀은 자유전자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마치 양전하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그래서 이를 p형 반도체라 합니다.
n형 반도체와 p형 반도체를 붙여 놓을 경우 순방향으로 전압을 걸면 전류가 흐르고 역방향으로 전압을 걸면 전류가 흐르지 않습니다. n형 반도체에 -, p형 반도체에 +가 되도록 전압을 걸어주면 n형 반도체에 있는 전자는 +극으로 p형 반도체에 있는 홀은 –극으로 이동하여 전류가 흐르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n형 반도체에 +, p형 반도체에 –가 되도록 전압을 걸어주면 홀은 –극으로 전자는 +극으로 끌려가 전류가 흐르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이 두 종류의 반도체를 붙여서 한쪽 방향으로만 전류가 흐르도록 만든 것을 다이오드라고 합니다. 다이오드는 교류를 직류로 바꾸는 데 사용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매우 얇은 p형 반도체를 두 개의 n형 반도체 사이에 끼워 넣으면 npn형 트랜지스터가 되고, 반대로 두 개의 p형 반도체 사이에 n형 반도체를 끼워 넣으면 pnp형 트랜지스터가 됩니다. npn형 트랜지스터에서 처음 n은 이미터, 그 다음의 p는 베이스, 마지막의 n은 컬렉터로 불립니다. 이미터와 베이스 사이에 순방향 전압을 걸고 베이스와 컬렉터 사이에 역방향 전압을 걸어 주면, 이미터의 전자가 베이스로 들어오게 되며 그중 일부는 컬렉터에 이르게 됩니다. 베이스에 홀을 몇 개 집어넣으면 홀은 전자를 잡아먹게 되고 이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이미터에서 수많은 전자가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작은 신호를 크게 만드는 증폭의 원리입니다.
벨연구소의 반도체 연구팀이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사용된 레이더 검파기였습니다. 레이더 검파기는 초기 라디오 검파기를 개량한 것으로 게르마늄을 원료로 사용하면서 인을 불순물로 첨가하고 있었습니다. 레이더 검파기를 통해 당시의 과학자들은 게르마늄과 같은 4족 원소가 반도체의 원료로 적절하며, 인과 같은 5족 원소를 도핑하면 전류의 운반체가 증가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전류의 운반체가 되는 전자나 홀의 수를 적절히 제어함으로써 전기 신호의 진폭을 증대시키는 증폭 효과를 얻어내는 데 있었습니다.
쇼클리는 게르마늄 반도체의 박판에 수직으로 전기장을 걸어서 운반체의 수를 제어하는 방식을 고안하였습니다. 실험 장치로는 엷은 석영판의 윗면에 반도체 박막을 붙이고 아래 면에 금속 막을 증착시킨 후 반도체 막과 금속막 사이에 전극을 부착시킨 것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두 막 사이에 걸린 전압을 매개로 운반체의 수, 즉 전류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이 방법을 사용하면 증폭 작용이 일어나야 했으나 실험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쇼클리는 바딘에게 자신의 실험이 번번이 실패한 원인을 분석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연구 끝에 바딘은 미세한 증폭 효과가 나타나긴 하지만 반도체의 표면 상태에 문제가 있어 그것을 관찰할 수 없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즉, 운반체 대부분이 반도체의 표면에 잡혀버려 반도체의 내부는 전기장이 차단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딘의 가설은 브래튼의 실험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반도체 표면상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바딘과 브래튼은 반도체를 전해액에 담근 뒤 전압을 걸어주는 실험에 착수하였습니다. 그 결과 증폭 작용을 얻을 수 있었으나 그 효과가 너무 적다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여 브래튼은 플라스틱 칼을 금박으로 싼 뒤 그것을 면도날로 가느다랗게 베어 2개의 슬릿을 만들었습니다. 이 금박을 게르마늄 본체에다 붙인 뒤 하나의 슬릿에는 작은 전압을 걸고 다른 하나의 슬릿에는 큰 전압을 걸었더니 증폭 전류가 흐르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바딘과 브래튼은 이러한 장치를 개량하여 금박 슬릿 대신에 금속 칩을 사용하여 반응물 사이의 거리를 더욱 가까이 접근시켰습니다. 이것이 1947년 12월 16일에 역사상 최초로 발명된 트랜지스터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전자공학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는 문을 연 순간이었습니다.
트랜지스터는 당시에 신호 증폭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던 진공관보다 훨씬 간단하고 빨리 작동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주 적은 전력과 공간으로도 작동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트랜지스터의 가치는 분명했지만 상업적 제품으로 개발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노력이 뒤따라야만 했습니다. 게르마늄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을 비롯하여 트랜지스터의 작동이 가능할 정도로 단단하면서도 적당한 크기의 결정체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게르마늄은 세계적으로 그리 많이 생산되지는 않았기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후보로는 실리콘이 떠올랐으며, 실리콘이 게르마늄과 같은 기능을 갖도록 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벨 연구소의 거의 모든 인력이 동원되어 5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된 뒤에야 오늘날과 비슷한 트랜지스터가 개발될 수 있었습니다.
트랜지스터가 개발되자 수많은 과학자들이 반도체에 인생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1955년에 쇼클리는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합니다. 그러나 그는 회사를 너무 독단적으로 운영하여 노이스와 무어 등이 1957년 쇼클리 회사를 떠나 페어차일드를 설립합니다. 그들은 이후 인텔을 비롯한 65개의 기업을 만들어 전자 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러한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지금의 실리콘 밸리입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과학자들이 시도한 것은 트랜지스터를 하나씩 따로 만들어서 납땜으로 연결하는 대신에 여러 개의 트랜지스터를 동시에 넣은 기판들을 연결하여 회로까지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집적회로인 IC입니다. 집적회로는 195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킬비와 페어차일드의 노이스가 동시에 발명하였습니다. 이 공로로 킬비는 2000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합니다. 아쉽게도 노이스는 1990년에 사망하여 노벨상을 받지 못합니다.
집적회로의 개발을 계기로 반도체 산업은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합니다. 반도체의 용도는 전자기기를 비롯하여 통신 장비, 산업용 기기, 군수용 장비 등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 뒤 집적회로는 더욱 개선되어 고밀도 집적회로, 초고밀도 집적회로, 극초고밀도 집적회로로 발전하였습니다.
바딘은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후 1951년 일리노이 대학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여기서 그는 초전도체의 이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초전도체의 구조는 1911년 온네스가 실험적으로 발견한 이후 40년이 지나도록 이론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었고 바딘이 이 난제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딘은 자신의 실험실의 연구원인 쿠퍼, 박사과정 학생인 슈리퍼와 함께 초전도 현상을 연구하였습니다. 바딘은 금속 내부 원자 배열의 성질에 대해, 쿠퍼는 두 전자가 마치 한 덩어리처럼 작용하는 현상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슈리퍼는 바딘과 쿠퍼의 연구에서 도출된 방정식을 풀이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1957년 바딘은 팀원들과 함께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BCS 이론을 제안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체 내부에서 움직이는 전자 사이에는 서로 밀어내는 반발력이 작용합니다. 두 전자가 모두 동일한 전하를 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BCS 이론은 두 전자 사이에 반발력뿐만 아니라 서로 당기는 인력이 작용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러한 인력 때문에 두 개의 전자가 쌍을 이루게 되어 초전도 현상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즉 전자가 지나갈 때 도체 내부의 양이온들이 전기력의 작용으로 전자 쪽으로 약간 끌리는데, 다른 전자가 보기에는 마치 그 전자가 +전하를 띤 것처럼 보여 그쪽으로 끌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두 전자는 마치 하나의 쌍을 이루는 것처럼 운동하게 되고 전자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양성자의 인력, 즉 전기저항을 물리칩니다. 이와 같은 전자쌍을 쿠퍼 전자쌍이라고 불립니다. BCC 이론은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물론 기본 입자, 원자핵, 액체 헬륨, 중성자별 등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에도 활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이 완전히 인정을 받는 데에는 15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1972년에야 비로소 BCS 이론은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데 탁월한 이론으로 각광을 받았고, 바딘은 두 번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바딘은 학자로서의 연구활동은 물론 교육과 기술 자문, 공공 활동에도 활발히 참가하였습니다. 그는 1991년 사망할 때까지 약 40년 동안 일리노이 대학 교수로 있었는데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는 제록스, 제너럴 일렉트릭스 등 수많은 기업체들에게 기술자문을 해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딘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 레이건 대통령 당시 과학자문을 맡아 미국의 과학 정책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바딘은 1991년 8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해결한 초전도체 이론은 저온물리학 세계의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고 그가 발명한 트랜지스터는 인류가 전자공학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