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나르치스는 이성을, 골드문트는 감성을 상징한다. 수도원에서 배움의 과정에 있었던 나르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 많은 골드문트를 만난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너나 내가 어떤 직책을 맡게 되든 간에, 또 우리의 형편이 어떻게 되든 간에, 네가 나를 진지하게 불러주고 필요로 하는 그런 순간에 내가 너에게 침묵하지는 않을 거야.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나르치스는 이성적인 쪽으로 골드문트는 감성 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줄 수는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비록 서로의 처지가 다르더라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며 더욱 발전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군계일학처럼 외로운 존재였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모든 면에서 자기와 상반된 존재인 듯하면서도 닮은 데가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나르치스가 어두운 성격에 깡마른 체격이었다면 골드문트는 눈부시게 화사한 존재였다. 또 나르치스가 사변가요 분석가였다면 골드문트는 몽상가로서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영혼의 소유자로 보였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의 그러한 대립적 측면보다는 공통점이 더 컸다. 둘은 훌륭한 인격자였고 두 사람이 보여주는 재능과 개성은 다른 생도들에 비해 두드러졌으며, 또 둘은 숙명적으로 그 어떤 특별한 경고를 받으며 태어난 존재였던 것이다.”
서로가 많이 다르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남자건 여자건, 나이가 많건 나이가 적건,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성격과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다르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 골드문트. 난 너와 같은 부류가 아냐. 네가 생각하는 그런 부류가 아냐. 물론 나도 말로는 하지 않은 서약을 간직하고 있지. 그건 맞아. 그렇지만 단연코 너와 같은 부류는 아냐. 오늘 너한테 해줄 말이 있는데, 언젠가는 이 말이 생각날 거야. 모름지기 우리의 우정에는 네가 얼마나 완벽하게 나와는 다른 존재인가를 너한테 보여주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목표도 의미도 없어.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야.”
다른 부류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진심으로 그를 위하고, 그가 잘 되기를 바라며,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그러한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축복인지 모른다.
“나르치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어. 마치 해와 달, 바다와 육지가 가까워질 수 없듯이 말이야. 이봐,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처럼 떨어져 있는 거야.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해서 서로가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같아질 수 없는 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와 다르니 그의 존재로 인해 내가 더욱 발전할 수 있고, 그와 다른 나로 인해 그는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원하는 것은 생생한 삶을 맛보고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여름과 겨울을 느끼고, 세상을 구경하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혐오스러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겪고 싶고, 이곳 선생님 밑에서 생활하고 배운 모든 것을 다시 잊고 벗어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선생님의 마리아 상처럼 아름답고 가슴 깊이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처럼 되어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도록 해야 한다. 그가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나와 다른 길을 가더라도 힘을 내라고 응원을 해주어야 한다.
나처럼 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다르다고 탓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다르기에 그가 나의 옆에 있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르치스의 생각에는 이러한 의문들이 맴돌았다. 오래전에 그가 충격과 경고를 주면서 골드문트의 청춘에 개입하여 그의 인생을 새로운 영역으로 옮겨놓았듯이 이제 골드문트가 돌아온 후부터는 오히려 골드문트가 그에게 생각거리를 주고 충격을 주었으며, 자신이 믿던 것을 회의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골드문트는 그와 대등한 존재인 것이다. 나르치스가 그에게 무엇을 주었든 간에 나르치스는 그 모든 것을 다시 골드문트에게서 되돌려받은 것 같았다.”
서로가 다르더라도 좋은 영향을 충분히 줄 수 있다. 내가 보는 세계를 그에게 보여줄 수 있고, 그가 볼 수 없는 것을 나의 눈으로 보게 해줄 수 있다. 나 또한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그로 인해 볼 수 있고, 내가 모르는 세상을 그로 인해 알게 될 수 있다.
“오늘은 내가 자네를 얼마나 좋아하며, 자네가 늘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자네가 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 털어놓아야겠네. 이런 이야기가 자네한테는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르지. 자네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익숙해 있고, 자네한테는 사랑이라는 것이 진귀한 게 아닐 테니까. 자네는 그토록 많은 여성들한테 귀찮을 정도로 사랑을 받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다르다네. 내가 살아온 인생에는 사랑이 빈곤하고, 나의 인생에서 무엇보다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랑일세.”
다른 그가 있기에 나의 삶이 풍요해질 수 있다. 나와 다른 그의 존재로 나는 더 나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 그가 나와 다르다는 것이 어쩌면 행운이고 축복일 수 있다. 그가 힘들면 내가 업어줄 수 있고, 내가 힘들면 그가 나를 업고 갈 수 있다.
“세상에 등을 돌리고 손을 씻은 채 정결한 삶을 살면서 조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사상의 정원을 꾸며놓고 잘 가꾸어진 화단 사이로 죄를 모르고 거니는 것보다는 어쩌면 세상의 끔찍스런 흐름과 혼돈에 자신을 내맡긴 채 그러다가 죄를 짓기도 하고 죄의 쓰라린 결과를 감수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더 당당하고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나에게 영향을 주고, 나 또한 그에게 영향을 주는 그와 나는 서로에게 있어 영혼의 파트너이다. 서로가 독립적인 존재로서 의지가 되고 힘이 되기에 다가올 시간이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나와 다르다고 배척하고, 나의 생각과 같지 않다고 밀어내는 이상 미래의 시간은 암담할 뿐이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