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이었음에

by 지나온 시간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지금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곤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없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한다. 하지만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했던 것을 잃어버리고 나면 그때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곤 한다.


김인숙의 <모텔 알프스>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의 존재가 너무나 당연하다 생각했던 한 여인이 그것을 잃고 나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갑작스런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평생을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는 남아있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이도 만들지 못하는 쓸모없는 몸인데도, 당신은 늘 나를 탐하고, 나는 그런 당신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러나 사랑이란 게 다 뭐야. 그렇게 사랑했던 당신을, 당신의 몸을 나는 이제 살찐 버러지처럼 바라보네. 사랑? 그딴 거 개나 물어가라고 그래. 나는 살아 있는 몸이었던 당신을 이젠 잊었으니 사랑도 잊은 거야. 그러니 내가 당신을 아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 사랑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마. 당신, 그러면 안 돼. 내가 당신을 떠나지 못하는 건 미움 때문이야. 환멸과 분노 때문이야. 나는 당신이 내게 보여준 생의 놀라운 변화들이 무서워. 나는 내 앞에 또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까 무서워. 자꾸 온 길로만 되돌아가게 돼. 그러나 왔던 길조차 절벽이네. 그 절벽을 넘으며, 보일까...”


사랑은 별것 아니었을까?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아무런 희망도 없이 남아있는 그 많은 세월을 버텨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할까? 그녀는 전에는 몰랐다. 남편의 그 평범한 손길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를.


“그러나 남편에게서는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없었고, 윤의 눈꺼풀이 졸음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저 홀로 무거워졌다.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몫의 이부자리를 침대 아래에 펴기 위해 몸을 일으키다 말고, 윤은 갑자기 남편의 다리를 침대 한쪽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이번엔 엉덩이를, 가슴을 그리고 팔을, 마지막으로 남편의 얼굴을 베개 한쪽으로 밀 때까지도 남편은 눈을 뜨지 않았다. 윤은 남편의 얼굴을 좁은 침대에 몸을 눕히고, 남편의 저항 없는 팔을 들어 팔베개를 했다. 갑자기 뺨이 뜨끈한 느낌이 들어 손바닥으로 뺨을 문대보니 물기가 만져졌다.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물기가 남편에게서부터 흘러나와 그녀의 뺨까지 적시고 있었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남편, 그녀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남편을 버리고 자신의 생을 다시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남편의 삶까지 모두 살아내야만 하는 것일까? 더 이상 남편이란 존재는 의미가 없음을 알기에 시간이 갈수록 그녀에게 다가오는 운명의 검은 그림자를 피할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늙은 고양이가 새끼들을 찾고 있었다. 윤은 가만히, 방문을 가로막고 있던 자신의 몸을 비켰다. 보렴, 여기에 너의 새끼가 있다. 살아 있는 몸을 잃어버린 딱한 아들 그리고 살아 있는 몸뿐인 딸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 네 생의 끝까지 갈 기억들이 있다. 담장 위의 늙은 고양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생의 끝까지 가서야 깨닫게 되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왜 그때는 몰랐던 것일까? 그저 평범하게 살아있는 것만이라도 엄청난 축복이라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우리는 정말 바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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