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를 분별하는 이상 괴로움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잠시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와 나의 생각이 다르기에 부딪힘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괴로움은 커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들은 자기중심적이기에 그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따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에 그로 인해 마음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그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는 저렇게 하고, 저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는 이렇게 하곤 한다.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옳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 나은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저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는 저렇게 한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그렇게 한다.
그가 하는 것을 나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옳은 것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절대 변하지 않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가진 종교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종교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사람은 자신이 볼 때 결코 옳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관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신의 기준으로 이미 결정되어 버린 세계에 그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말은 거짓말일 뿐이다. 그의 일부를 이해하는 것을 가지고 그를 이해하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을 하는 내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잘못의 기준이 무엇일까? 그는 일부러 내가 생각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그의 잘못이 그 자신으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하는 경우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의 잘못이 보인다면 나는 그의 이상으로 잘못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만큼 그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좁은 세계에 사는 우물 안 개구리이기 때문이다. 그의 잘못만 볼뿐 나의 잘못을 보지 못하기에 그의 잘못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나의 편협한 세계를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나의 세계에 비추어 봤을 때는 그가 문제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문제가 보이고 그의 문제를 비난하고 그의 문제를 가지고 그를 배격한다면 나 자신의 지극히 좁은 세계관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는 내가 아니다. 그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기에 그는 그러한 선택을 하고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일부러 나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는 그 상황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편협한 세계와 가치관에 있을 뿐이다.
그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나 자신이 옳고 내 생각이 기준이고 나의 판단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상 자신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주위에서 아무리 이야기해 주어도 보이지 않는 것이 볼 수가 없다. 어쩌면 나는 눈뜬 시각 장애인인지도 모른다.
그에게서 나를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있는 그대로 그 존재로서 인정해야만 한다. 그와 나를 분별하지 않는 하나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존재자로 인식할 때 비로소 그와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는 또 다른 내가 아니기에 그 이상을 바란다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