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에 대해 나 자신이 판단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판단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 판단을 오로지 나의 기준으로 하게 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판단을 한다는 것은 어쨌든 기준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기준을 나로 삼아 모든 것을 재단하는 것에 있다. 우리 대부분의 경우 나의 기준은 거의 절대적으로 옳다는 무의식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더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결코 흔하지가 않다.
우리 각자의 존재는 그 다름에 존재의 의의가 있다. 만약 모든 사람이 같은 존재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살아가야 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이 각각 다르기에 그 자리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각자가 다르기에 각기 다른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어서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와 비슷하기를 원한다. 나의 생각과 비슷하기를 바라고, 내가 바라는 대로 해주기를 소원한다.
그렇기에 나와 가까운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와 비슷하기를 원할 뿐이다.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할수록 그는 점점 나와 거리가 멀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그를 판단한다는 것은 그와 나를 분별한다는 것이고 이는 나의 기준에 입각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나와 다른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판단을 하지 않을수록 타인을 그냥 있는 그대로 포용할 수 있게 된다. 나의 능력이 부족해서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성숙하기에, 나의 능력이 전보다 너 나아졌기에 그러한 판단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잘못을 찾아내고 그의 잘못을 문제 삼게 된다면 그와의 좋은 관계는 그리 희망적이지 못할 수 있다. 점점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 더 이상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못하기에 존재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 그가 나의 생각과 똑같기를 소원하는 것보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 없는 관계가 더 소중한 순간을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판단보다는 포용이 타인을 더 가까운 관계로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판단은 타인과 점점 멀어지게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