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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 성지

by 지나온 시간들

춘천에 다녀오는 길에 배티 성지에 잠깐 들렸다. 배티 성지는 1801년 이후 계속되는 천주교 박해로 인해 이 지역 신자들이 숨어서 신앙을 지켜온 곳이다. 이곳 성당 옆에는 최양업 신부 박물관도 소재하고 있다.


당시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람들이 다니기 힘든 오지 산골로 숨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곳 배티 성지는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나와 거의 50분 이상을 들어가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톨게이트에서 한 시간 가까이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만큼 이곳은 현재나 예전이나 사방에서 도달하기 힘든 곳이라는 뜻이다. 산이 그리 높지는 않으나 배티 성지 주위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어디서 오건 산을 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니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신앙을 지켜왔는지 지리적 요건만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성당 옆에 위치한 최양업 신부 박물관부터 들렀다. 최양업은 김대건 신부를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가 된 분이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순교하였다. 1836년 그의 나이 당시 15세 때 피에르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김대건, 최방제와 더불어 마카오로 신학 공부를 위해 떠났다. 1844년 부제서품을 받았고, 184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신학 공부를 마친 후 귀국하려고 하였으나 입국을 금지당해 외국에서 사목을 하다 1850년 비밀리에 귀국한다. 이어 진천군 배티를 중심으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넓은 지역을 걸어 다니며 천주교인을 위해 사목 생활을 하였다. 12년 동안 걸어 다니며 수많은 지역을 위해 봉사하다 1861년 과로와 장티푸스에 의해 선종하였다. 그가 일 년 동안 걸어 다녔던 거리는 약 2,800km 정도였다고 한다.


최양업 박물관에는 신학생 시절부터 선종까지 그가 걸어온 신앙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배티마을에는 조선교구 신학교가 있었고, 여기서 그는 신학생들을 지도하였고, 천주교 신자들의 비밀 교우촌을 다니며 사목 생활을 하였다. 박물관 내부에서 그의 남겨진 유물을 볼 수 있었고 삶의 험난했던 과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박물관 한쪽에는 기념품 가게도 있었다. 최양업 신부 생각을 하며 마리아상과 예수님 초상화 하나를 샀다. 기념품을 파는 곳에는 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냥 현금을 봉헌함에 넣거나 계좌 이체를 하고 원하는 물건을 사가게 되어 있었다. 같이 기념품을 고르던 아주머니가 내가 고른 마리아상을 보더니 예쁜 것을 골랐다고 하시면서 마리아상을 그냥 들고 가면 깨질 수도 있다고 직접 에어캡으로 잘 포장을 해주셨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포장까지 해주시니 너무나 고마웠다. 기념품 가게에는 포장지, 에어캡, 종이가방까지 있어서 사가는 사람이 알아서 포장도 하고 돈도 알아서 내는 시스템이었다. 서로를 믿는 이러한 분위기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배티’란 ‘배나무 고개’를 뜻한다고 한다. 충북 진천에서 경기도 안성으로 가는 산 주위에 돌배나무가 많아 마을 이름 또한 배티마을이었다. 당시 이 지역은 여러 지역과 연결되면서도 깊은 산골에 위치하고 있어 1830년 대부터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850년 배티 교우촌 안에 조선 최초의 신학교가 설립되었고 최양업 신부 등이 여기서 신학생들을 키워냈다.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 현재 배티 성지에는 2층 규모의 고딕 양식 기념 성당이 건립되어 있다. 성당 주위로는 순례자의 길도 조성되어 있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이 근처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죽어 나갔다. 자신의 종교마저 마음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진정한 인간다운 삶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권력남용으로 반복되어서는 안 될 역사적 오점이다. 이러한 역사의 잘못이 계속되어서는 안 되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과 후손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러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어 어두웠던 시대, 빛처럼 살다가 세상을 떠난 그분들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다.


배티 성당


최양업 신부 박물관


성당 내부



내가 산 마리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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