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의 인연은 시간의 함수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을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소중하고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볼 수 없게 되는 시간이 다가온다. 잠시 스치듯 왔다가 가는 인연도 무수히 많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연이라는 시간은 언제 끝날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한강의 <희랍어 시간>은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리석음이 그 시절을 파괴하며 자신 역시 파괴되었으므로, 이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함께 살게 되었다면, 내 눈이 멀게 된 뒤 당신의 목소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보이는 세계가 서서히 썰물처럼 밀려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의 침묵 역시 서서히 온전해졌을 겁니다. 당신을 잃고 몇 해가 지난 뒤, 두 개의 필름 조각을 통해 해를 올려다본 적이 있습니다. 두려웠기 때문에 정오가 아니라 오후 여섯 시에. 엷은 산을 부은 듯 눈이 시어 나는 오래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리웠을 뿐입니다. 내 곁에 앉아 있지 않은 당신의 손등이. 연한 갈색 피부 위로 부풀어 오른 검푸른 정맥들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우리는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잊은 채, 현재를 살아가고, 나중에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곤 한다.
그러한 어리석음이 우리 삶의 일부를 파괴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누적으로 인생을 채워가곤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에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충분히 가슴 벅찬 삶이 될 수 있음에도, 우리는 그러한 능력이 되지 못해, 진정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셔츠가 비와 땀에 젖어 있다. 붕대를 감은 오른손을 허공에 둔 채, 그는 그녀의 등을 끌어안은 왼팔에 조금 더 힘을 준다. 아래층에서 누군가 세게 문을 닫으며 복도로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침묵하는 그녀의 우산에 빗줄기들이 소리치며 떨어졌던 것을 그는 모른다. 운동화 속의 맨발들이 흠뻑 젖었던 것을 모른다. ‘갑자기 찾아오지 말라고 했잖아. 길에서 헤어지면 기분이 더 이상하다고 했잖아.’ 그녀가 안으려고. 팔을 붙들려고. 손을 잡으려고 하자 물고기처럼 재빨리 빠져나간, 지느러미처럼 부드러운 살갗을 모른다. 빗물이 고여 생긴 검은 웅덩이들을, 그 위로 날카로운 대침처럼 꽂히던 빗발을 모른다.”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그 소중한 인연의 시간들을 훨씬 더 아름답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을, 주어진 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야 그것을 깨닫곤 한다.
모든 것이 다 끝난 후, 돌이켜 보는 순간만이 남았을 때, 후회 없이 그 시간을 보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 주어진 아름다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희랍어를 배울 수 있는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그 소중했던 시간을 잃어버렸던 것일까? 분명히 우리에게 주어졌던 시간이었음에도 무엇을 하였길래 그러한 소중한 시간을 잃고 말았던 것일까?
아름답고 의미 있는 시간과 인연들을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