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인연이라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원하지 않는데도 떠나보내야 하며, 바라지 않는데도 작별을 해야 하는 그러한 인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지 모른다.
최은미의 <보내는 이>는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삶의 원하지 않는 단면에 대한 이야기이다.
“8년여를 봐오면서도 진아 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구나 싶을 만큼 진아 씨는 단기간에 나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성큼성큼 빨아들였다. 진아 씨한테 빠져들어 갔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는데, 실은 정신을 차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예전부터 그런 편이었다. 좋아할 만하다 싶으면 쉽게 마음을 주었다. 마음을 먹고, 마음을 주고, 그런 후에는 전력을 다했으며, 다한 만큼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처를 받고, 더 나아가면 남몰래 앙심을 품었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음을 줄 수 있는 인연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축복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의 존재에 어쩔 수 없게 되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상처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인연의 무거움이 그 모든 것을 넘어서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힘든데. 진아 씨 사정은 뭔데. 너도나도 비슷하게 겪는 그런 거 말고 난 진아 씨만의 질감을 원해. 조금 더 간질간질한 디테일을 나한테 달라고. 진아 씨. 맘카페에서 모르는 여자들이랑 나누지 말고 나랑 나눠. 우리가 특별한 사이라는 걸 조금만 더 느끼게 해줘. 나는 다른 거 안 바라. 무심코라도 하루 안부 물어주는 거. 하루에 10분쯤은 온통 그 사람한테만 집중해주는 거. 남편이랑은 이제 못하는 거. 남편 때문에 다른 사람이랑도 못 하게 된 거. 그걸 나랑 하자.”
인생은 홀로서기이지만, 그래도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러한 사람을 이생에서 만났기에 살아갈 이유가 하나 더 존재한다. 그가 어떠한 형편에 있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과 오래도록 더 많은 시간을 누리면 좋겠지만 삶은 우리에게 그러한 것을 쉽게 허락하지도 않는다.
“진아 씨, 잘 지내는지. 이제는 고무장갑을 냉장고에 넣지 않아도 녹지 않는 가을이 되었어. 어느 날은 이런 말로 시작하는 꽤 긴 얘기도 쓴다. 진아 씨, 어렸을 때 내 별명은 영지버섯이었어. 식탁에 앉아 써내려가다 보면 저만치에서 여전히 슬라임을 만지고 있는 나의 윤이가 보인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진아 씨네 집이 떠오르고 나는 달랠 길 없는 마음을 안고 아이 곁에 가서 앉는다.”
모든 인연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영원히 지속되는 인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쉽다고 할지라도 더 오래 지속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삶은 어쩔 수 없으므로 가득하기에, 나의 마음이 닿았던 그 인연의 끝남 또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