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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되어버린 아내

by 지나온 시간들

나에게 가장 가까웠던 존재가 서서히 변하여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에게 소중했던 존재가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을 것이라 믿고 있건만, 그 믿음이 보란 듯이 깨져버린다면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는 사랑했던 아내가 전혀 다른 존재인 식물로 변해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날 밤 내가 세 번째 대야의 물을 끼얹었을 때 아내는 노란 위액을 꾸역꾸역 토해냈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아내의 입술이 오그라붙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 희끗희끗한 입술을 더듬어보았을 때 나는 마지막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가냘픈 음성을 들었다. 다시는 아내의 목소리를, 신음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아내는 서서히 나무가 되어갔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더 이상 먹지 못하고, 물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늘을 향해 나무처럼 두 팔을 벌리고 살아가게 되었다. 무슨 이유로 아내가 그렇게 변해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나무가 되어가는 아내를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제 아내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무가 되어가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물을 끼얹어 주는 것이었다.


“석류알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자잘한 열매들을 한 손에 받아 들고 베란다와 거실을 연결하는 새시 문턱에 걸터앉았다. 처음 보는 그 열매들은 연두색이었다. 맥줏집에서 팝콘과 함께 곁들어져 나오는 해바라기 씨처럼 딱딱했다. 나는 그중 하나를 집어 입 안에 머금어보았다. 매끈한 껍질에서는 아무런 맛도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힘주어 깨물었다. 내가 지상에서 가졌던 단 한 여자의 열매를. 그것의 첫맛은 쏘는 듯 시었으며, 혀뿌리에 남은 즙의 뒷맛은 다소 씁쓸했다.”


결국 아내는 나무로 변하여 식물처럼 그녀의 입에서 열매를 토해냈다. 아내의 열매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 열매로 나는 대체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내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이제 고작 아내가 토해낸 그 열매를 보는 것 밖에는 없다. 더 이상 아내는 존재하지 않고 아내는 그저 변해버린 식물로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다음날 나는 여남은 개의 조그맣고 동그란 화분을 사서 기름진 흙을 가득 채운 뒤 열매들을 심었다. 말라붙은 아내의 화분 옆에 작은 화분들을 가지런히 배열한 뒤 창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담배를 피우며, 아내의 아랫도리에서 와락 피어나던 싱그러운 풀냄새를 곰곰이 곱씹었다. 쌀쌀한 늦가을의 바람이 담배 연기를, 내 길어난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봄이 오면, 아내가 다시 돋아날까. 아내의 꽃이 붉게 피어날까. 나는 그것을 잘 알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해가기 마련이다. 나에게 가까웠던 소중했던 존재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달라질 수 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소통할 수 없고, 무언가를 함께 할 수도 없는 그러한 타자로서만 존재하게 될 수도 있다. 과거로 돌아가려 해도 그럴 수가 없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운명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존재는 현재에서 의미가 있을 뿐이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소중한 존재라도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오늘 그 사람과의 삶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식물로 변해버리기 전에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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