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by 지나온 시간들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무언가를 잃은 것은 가슴 아프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이건, 나의 삶에 대한 사랑이건,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잃었기에 가슴이 시릴뿐이다.


내가 아끼는 것이 나와 오래도록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살아가면서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언젠가는 잃게 된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순간은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그 시기가 언제인가만 문제 될 뿐이다.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것들, 나와 함께 했던 것들과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 한다. 함께 지냈던 밤들도, 함께 거닐던 겨울 안개도, 함께 바라보던 아름답던 촛불도, 그 모든 것과 이제는 이별을 고해야 한다.


소중한 것을 잃었기에 나는 너무나 절망에 빠져 문을 잠그는 것마저 장님처럼 더듬거리게 된다. 사랑 가득했던 그 집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따뜻한 그 방 안의 공기가 그리울 뿐이다. 나의 존재와 나의 사랑은 이제 끝이 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있었던 그곳, 나를 살아 있도록 해주었던 그곳, 이제 그곳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그 문을 잠그고 그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마음은 그 집에 갇혀 있을 뿐 이제 더 이상 나와 함께 할 수가 없다.


삶은 내가 원하지 않는 대로 흘러가니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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