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사랑마저 이겨버린 채 우리의 인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사람의 힘은 극히 미약해 그 운명에 어찌하지 못한 채 흐르는 물처럼 그저 뒤엉켜가기도 한다. 한강의 <아기 부처>는 사랑하지는 않지만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어느 한 여인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느 신혼의 부부들처럼 우리는 종종 다투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다투고 난 뒷면 내 마음이 이상스러울 만치 냉정해졌고, 살의를 품지 않은 서늘한 마음으로 차라리 그가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랐다는 것이다. 방송을 끝내고 돌아와야 할 시간이 한 시간쯤 지나면 그가 사고라도 당했기를 바라는 자신을 발견하며 놀라곤 했다. 상복을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하면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는 왜 그가 죽기를 바랐던 것일까? 운명이 그들을 묶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왜 그가 잘못되기를 바랐던 것일까? 사랑하려고 노력했지만 사랑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지 못해 그랬던 것일까?
“나는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의 흉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이제 그 흉터 때문에 그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의 흉터가 다만 한 겹 얇은 살갗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다는 것이 내 마음의 얇은 한 겹까지 벗겨 내주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죄가 있다면 모두 나의 것이었다. 삶이 얼마나 긴 것인지 몰랐던 죄, 몸이 시키는 대로 가지 않았던 죄, 분에 넘치는 정신을 꿈꿨던 죄, 분에 넘치는 사랑을 꿈꿨던 죄, 자신의 한계에 무지했던 죄, 그러고도 그를 증오했던 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가학 했던 죄.”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어서였을까? 노력으로 충분히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사랑하려는 노력이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그러한 것들이 가능하리라 그녀는 꿈꾸었던 것일까?
“나는 타인의 그것처럼 그의 흉터를 보았다.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 듯이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세계가 다른 방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것을 낯설게, 그리고 오래 바라보았다. 선한 것과 악한 것, 의무와 책임과 방기, 진실과 거짓 따위가 내 눈앞에서 경계선을 무너뜨려갔다. 나는 그 혼란에 더 이상 놀라거나 당혹스러워하지 않았다. 다만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 간격이 나를 구해주었다.”
어쩌면 적당한 거리에서 타인을 인정하는 것이 사랑하려는 노력보다 나은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러한 노력이 사랑으로 전환될지는 모르나, 서로에게 기대와 상처를 주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은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내가 그를 버리지 않는 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그리고 나는 누군가를 버릴 만한 인간이 못 되니 이 생활이 끝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둘 중 한 사람이 죽지 않는 한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나. 그 어리석음으로 서로를 망쳐가면서도 그것을 몰랐나. 그것을 인내라고, 혹은 연민이라고 부르며 믿었으나, 과연 누구를 위한 인내였나.”
자신을 상대를 버리지 않을 것이기에 상대도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분명히 착각일 뿐이다. 인간은 결코 타인을 자신보다 우선시하지 않는다. 타인을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에 대한 실패를 전제해야 하는 것일 수 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냉정한 게 아니라 단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뿐이야’라고도, ‘이 차가운 마음이 아니었다면 여태까지 버텨오지도 못했어’라고도 변명하지 않았다. ‘노력했어, 내가 선택한 것이라서 책임도 지고 싶었던 거야’라고도, ‘어쩌겠어, 그게 내 한계였는 걸’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시선으로 사물을 꿰뚫을 수 있다고 믿는 듯이, 그의 얼굴 뒤편에 단단히 버티고 선 철제 현관문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사랑하지는 않으나 사랑하려는 노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하려는 노력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면 그러한 노력을 알아주기만 하더라도 마음은 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랑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운명은 아마도 그것을 그들에게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아기부처는 없지만 아기부처를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