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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기대하지 않아야 할까?

by 지나온 시간들

우리는 주위의 소중한 것들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며 굳게 믿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을 꿈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강의 <어느 날 그는>이라는 소설은 소중한 사람과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리 오래가지 못한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그가 할 말을 잃고 있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랑이라는 게 만약 존재하는 거라면, 그 순간순간의 진실일 거야. 순간의 진실에 대해서 물은 거라면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영원을 믿어? 있지도 않은 영원이라는 걸 당신 힘으로 버텨내려고? 버텨내 볼 생각이야?”


사랑은 단순한 시간의 함수에 불과한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 그 좋았던 감정과 마음도 어느 한순간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한때는 목숨같이 좋아했던 사람도 헌신짝처럼 아무 쓸모 없는 것이라 생각하여 하찮게 버리게 되는 것일까? 사랑이란 단지 어느 순간에서의 진실에 불과한 것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것에 그리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영원하지 않을 사랑을 우리는 그저 영원할 것이라 믿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도 그렇잖아.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좋아지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만이 가장 크고 중요한 진실이지만 상황이 바뀌거나, 시간이 지나거나 하면 모든 것이 함께 바뀌어버리잖아. 민화는 숟가락을 바로 쥐었다. 입속으로 찌개와 밥을 한 움쿰씩 집어넣었다. 음식을 우물거리며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잠시 모습을 감추고 있던 광채가 다시 민화의 눈과 웃음 속으로 돌아왔다. 쾌활하게 웃으며 그녀는 말했다. 결국 영원한 건 없는 거야, 그렇지?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살기가 훨씬 쉬워질지도 몰라.”


사람은 변한다. 사람의 감정도 변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의지는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지났다 하여, 자신의 상황이 바뀌었다 하여, 한때는 진실했던 그 마음마저 쉽게 외면해 버리는 것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영원한 것이 없다고 하여 그렇게도 쉽게 사랑이라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랬다. 그는 민화의 애정이 식어가는 과정을 보았다. 그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 과정을 똑똑히 목격하면서도 그것을 저지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이었다. 그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무엇을 그렇게까지 잘못했단 말인가? 얼마나 큰 잘못에 대한 벌로 그녀는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인간에게 의지가 없다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들이 단지 짧은 순간에만 존재한 후 사라져버리고 만다. 우리의 세상이 의지의 세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자신의 감정대로, 상황이 여의지 않으면 어떠한 의지도 시험하지 않은 채 그저 흘려보내고 마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순간 그가 확연히 깨달은 것은 자신이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그는 그녀와 함께 살 수 없었다. 그녀의 살을 안고 입을 맞출 수 없었다. 같은 찌개를 떠먹고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삶과 같았다. 그를 매혹하고 잠시 기쁨을 주었으나 동시에 그를 배반하였다. 다만 머물다 지나갔을 뿐, 결코 그의 손아귀에 붙잡혀주지 않았다. 보람이나 좋은 추억조차도 남겨주지 않았다. 환멸에 가까운 쓴맛만이 그의 혀끝에 남아있었다.”


모든 것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감정은 그것이 사랑이라 할지라도 변하고 또다시 변하기도 한다. 좋아했던 감정이 변했다면, 그 변했던 감정이 시간이 흘러 또다시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명하지 못한 현실만을 보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놓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감정에 솔직한 사랑보다는 의지에 붙들린 사랑이 어쩌면 더 위대한 사랑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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