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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도 두렵지 않다

by 지나온 시간들

해질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그나마 따스함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자리라면 돌아가는 그 길은 다른 길이다. 한강의 <해질녘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 그리고 홀로 된 아빠를 보는 한 아이의 서글픈 이야기이다.


“곧 황혼이 내릴 것이다. 왜 하루 중 이맘때가 되면 혼자란 생각이 들곤 하는 걸까 하고 아이는 생각한다. 바다에 나가보고 싶다고, 그러나 그 길이 싫다고, 그 개들이 무섭다고 생각한다. 과일 가게 앞에 매어져 있던 작은 개를 생각하자 아이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그 복잡한 마음 밑바닥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감각은 필경 무서움이다. 그 무서움이 왜 자꾸만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는지, 자신의 몸뚱이를 친친 동여매는 것같이 느껴지는지 아이는 모른다. 조금씩 서쪽 하늘이 붉어지지 시작한다.”


엄마는 왜 가족을 버리고 떠난 것일까? 그래도 한때는 사랑으로, 따스함으로 모든 것을 같이 했던 가족이었는데 엄마는 무슨 이유로 어린 딸을 버리고 집을 떠난 것일까? 엄마가 없는 집, 아빠는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기에, 해질녘이 되는 시간이면 딸아이는 그 시간이 점점 두려울 수밖에 없다. 해가 지면 다른 이들은 집으로 돌아오건만 엄마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동네의 개들마저 무섭기만 하다.


해질녘이 되면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개들도 엄마가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저리도 씩씩하게 짖어대며 살아가건만 왜 자신은 그 개들의 짖는 소리마저 무서운 것일까?


“다음날 아이가 잠에서 깨었을 때 엄마는 없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가 떠났다는 것에 대한 실감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주 떠난 게 아니라 곧 돌아올 것이라고도 희망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저 생겨난 일대로 숨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견디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엄마가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언젠가부터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원히 함께 삶을 같이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비록 아프고 힘들지만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힘이 언젠가부터 생겼을 것이다.


“바닷바람이 아이의 옷 속으로 파고든다. 오그라드는 가슴을 펴려 애쓰며 아이는 계속해서 걸어간다. 무허가 주택들의 들쭉날쭉한 담벼락들이 흐린 시야 속에서 겹쳐진다. 해질녘의 개들이 어떤 기분일지 아이는 궁금하지 않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오래 외로웠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 순간 두려운 것이 없다. 까끌까끌한 바람이 아이의 빨갛게 젖은 얼굴을 훑어 내린다. 꽃핀 아래 흩어진 머리털이 석양에 물들며 헝클어진다.”


삶의 깊은 수렁에서 너무 아파보았기에, 너무 외롭고 힘들었기에 이제는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그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해질녘 개들 어떤 기분인지 관심도 없다. 크게 짖어대는 개들의 소리도 하찮게 들릴 뿐이다.


삶은 어차피 혼자서 걸어가야만 하는 길일지 모른다. 가끔 누군가 함께 할 수 있음으로 좋을지 모르나 어쨌든 인생이란 혼자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만 더 힘들지 않고 더 아프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더 이상 혼자 걸어가는 삶이 길이 두렵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버렸어도 누군가와 함께 그 길을 가지 못할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꿋꿋이 걸어가는 것이 운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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