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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05. 2023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살아가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는 한다.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찌그러지고 부서지며 때로는 파괴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영하의 <아이를 찾습니다>는 평범한 한 부부가 4살 된 아이를 갑자기 잃어버린 후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아이를 잃은 후 그들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했고, 더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남으로 인해 삶이 완전히 붕괴된다. 


  “지난 십일 년간 윤석의 인생 전부가 그 전단지에 요약돼 있다. 그는 전단지를 위해 돈을 벌고 전단지를 뿌리기 위해 밥을 먹었다. 아침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바쁜 행인들의 소매를 잡았다. 주말에는 근처의 아동보호시설을 찾아다니며 수소문을 했다. 선거철에는 인쇄소에 일감이 밀리니 그전에 물량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단지는 집안 어디에나 있었다. 화장실에도, 하나밖에 없는 방구석구석에도, 심지어 미라의 낡은 핸드백 속에도 가득 있었다. 너무 많아서, 마치 전단지라는 이름의 벌레들이 야금야금 집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이의 손을 놓친 것은 불과 10여 초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지극히 짧은 순간이 그들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평범했던 그들의 삶은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을 꿈꿀 수조차 없었다. 


  “잠시 후 두 여자가 코밑이 벌써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한 아이 하나를 등을 떠밀다시피 하면서 데리고 들어왔다. 아이는 쭈뼛거리면서 발을 현관 안으로 들여놓지 않고 있었다. 아이는 그가 그려왔던 성민이와 너무나도 달랐다. 그들 부부를 닮은 구석이 전혀 없어 보였고, 그들이 오랫동안 배포해온 전단지 속의 소년과는 너무나 판이했다. 전단지 속 소년은 볼이 토실토실하고 눈매가 순한, TV 드라마의 아역 배우를 닮은 듯한 모습인데, 지금 그의 눈앞에 나타난 아이는 눈이 쭉 찢어진데다 살이 쪄 배가 불룩했다. 어딘가 욕심 사납고 성마른 데가 있는 아이로 보였다. 윤석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길에서 저 아이를 만났다 해도 절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거야. 그래도 윤석은 달려나가 아이의 손을 잡았다.”


  10여 년을 아이를 찾아 헤맨 후 아내는 결국 정신병에 걸리고 만다.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도 날아가고 이제 하루를 살아나가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던 중 아이가 10여 년 만에 돌아온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들이 찾던 아이와는 너무나 다르게 변해 있었다. 그들이 잃어버린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기다렸던 아이였지만 아이가 돌아옴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다시 더 크게 변화를 겪게 된다. 


  “몇 달 후 윤석은 성민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창고 바닥에 난방을 깔고 부엌 설비를 들였다. 무허가 건물이지만 워낙 시골이다보니 와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뒷산의 폐광을 임대해 표고버섯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버섯 농사는 크게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농촌이라 생활비가 워낙 적게 들었고 간단한 식재료는 텃밭에서 구할 수 있어 살림은 도시에서보다는 넉넉한 편이었다. 성민은 중학생이 되었고 곧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어느날 집을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비록 아이를 찾았지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세월은 그들의 삶을 예전으로 돌려놓지 못했다. 돌아온 아이는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조차 힘들었고 결국 아내는 사망하고 만다. 아이는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어떠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고, 겉으로만 돌아다 다시 집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는 오른손을 내밀어 아이의 작은 손을 쥐었다. 아이는 문득 울음을 그치고 그를 말똥말똥 올려다보았다. 그는 왼손도 마저 내밀어 아이의 오른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이가 간지러운 듯 발을 꼼지락거리며 좋아했다. 아이의 양손을 놓지 않은 채 그는 오래도록 평상 위에 앉아 그에게 찾아온 작은 생명을 응시했다.”


  아이를 잃어버린 당시로 시간이 되돌아간 것일까? 세월이 지나 자신의 아이가 낳은 갓난아기를 아빠는 맡게 된다. 어릴 적 아들의 시간을 손자가 채워줄 수 있을까? 삶은 어쩌면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고, 그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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