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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06. 2023

삶의 극한에 이르고 나면

  삶에 대한 이해에 있어 경험이 가장 큰 스승일지 모른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쌓아도, 삶을 직접 경험한 것보다 나을 수는 없다. 삶의 극한에 이르고 나서 얻은 나름대로의 진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부터 바뀌게 한다. 


  한강의 <검은 사슴>은 광부들의 사진을 찍으며 죽음의 경계까지 가보았던 한 사진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눈앞에서 죽음을 보았고, 자신 또한 죽음에 경계에까지 가보았기에 삶과 죽음에 대해서조차 담담해질 수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그의 다리를 얼어붙게 했다. 나약하게도 장은 벌써부터 그곳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플래시의 빛이 다시 불러일으킬 반발도 반발이지만, 자신의 행동이 그들의 위험한 작업에 방해가 되어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에 그는 다시 카메라를 꺼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게 될까? 더 이상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없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하며 그 남은 시간을 보내게 될까?    삶의 극한을 경험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극한을 경험해 본 사람은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인식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 갱도의 끝에서 보았던 햇빛을 장은 잊지 못한다. 비로소 나쁜 꿈이 끝났다는 것을, 장에게 삶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말이 아니라 벅찬 감각으로 실감하게 해 준 빛이었다. 그러나 햇빛 가운데로 막상 몸을 내밀었을 때 장은 쏘는 듯한 그 빛에 눈을 감았으며, 기쁨 대신 강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죽을 줄 알았던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을 겪어본 사람은 그에게 주어진 또 다른 시간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남아있는 시간 동안 삶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이렇듯 힘든 삶의 경험이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나온 뒤, 장은 자신이 갇혀 있었던 시간이 그렇게 길었다는 것에 놀랐다. 장은 다만 졸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따금씩 서로의 팔을 꼬집어주었던 일, 임의 등과 어깨에 자신의 등을 맞대면 그 부분만 따뜻하여 다른 부분의 얼어붙는 듯한 한기를 절감했던 일, 어둠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이따금씩 켜는 안전등의 불빛으로 조금이나마 달래어지던 일 따위를 기억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무려 육십사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삶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죽음 앞에서 삶은 왜소할 뿐이다. 커다란 것을 잃어본 사람은 그래서 삶에 대한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한순간뿐이고 그것 또한 덧없다는 것을 안다. 삶의 극한에 가보았던 사람은 그래서 담담하게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초월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에 삶에 대해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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