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온 시간들 Jun 19. 2023

죽산성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위치하고 있는 죽산성지는 1866년 병인방해 당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었던 곳이다. 충청도와 경기도의 길목이었던 죽산은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인들이 잡혀오면 이곳에서 심문과 고문을 한 후 처형하였다. 현재는 죽산면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병인박해가 시작되었던 1862년부터 1932년까지 약 70년 동안 이 주위에 천주교 신자 공동체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당시 박해의 참상과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당시 60세의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교한 여기중은 가족 3대가 한 자리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당시 국법으로는 아무리 중죄인이라 할지라도 부자를 한날 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처형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곳 죽산에서는 부자와 부부를 동시에 처형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陣)이었다고 한다. 고려 시대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을 공격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였다. 오랑캐가 진을 쳤다고 하여 이진이라 불려졌다. 병인박해 당시 이곳으로 끌려오면 살아서 다시 나오지 못하니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잊어버리라 하여 ‘잊은터’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가 한번 끌려가면 영원히 볼 수 없는 곳이었다. 


  죽산에는 ‘두들기’라는 곳도 있다. 이곳은 당시 인가가 드문 주막거리였는데 용인이나 안성에서 포졸에게 끌려가던 신자들이 이 근처 주막에서 잠시 쉬어가곤 했다고 한다. 포졸들은 줄줄이 묶어 둔 신자들을 툭하면 트집을 잡아 두들겨 패곤 했다. 잡힌 신자들을 쫓아 따라온 가족들은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땅을 두드리며 원통해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두들기’라는 지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것이다. 


  기록에는 당시 순교한 신자의 수가 25명이라고 하지만, 기록에 불과할 뿐 훨씬 많은 신자들이 처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은 1995년부터 천주교 순교성지로 조성되었다. 광장, 성당, 피정관, 묵상 산책로, 순교자의 묘, 돌 묵주기도의 길, 충혼탑 등이 들어서 있다.             

   




작가의 이전글 구원의 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