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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11. 2023

구원의 문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우리의 삶은 좋음과 좋지 않음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그러한 분별에서 자유롭다면 삶이 한결 가벼워질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절대적인 유한성은 그 가벼움을 어찌하지는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김훈의 <저만치 혼자서>는 평생을 수녀로 지낸 어느 두 노 수녀의 말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은 죽음을 배제할 수 없지만, 죽음은 치유 불가능한 몸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구원의 문이다. 그러므로 부활한 예수의 빈 무덤에서 그리스도와 사도는 만나는 것이다.”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한계란 누구의 인생에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한계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 우리 존재를 부끄럽게 만들 뿐이다. 스스로에 대한 착각, 타인에 대한 인지 부족, 그 외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한 무지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계의 성벽을 더욱 높게 만든다.


  심지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그는 자신의 우물에서 헤어 나오지도 못한다. 


  어쩌면 그러한 한계와 유한성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문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그 문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한 빈 무덤에서 예수를 만나듯 그 구원의 문을 통해 진정한 나를 만나고 모든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구원의 문을 찾기 위해 그동안 얼마의 노력을 해왔던 것일까? 구원의 문을 통하여 진정한 나를 만나고, 내가 누구인지를 보다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구원의 문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은 아닐까?


  내일은 필요 없다.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구원의 문을 찾아 그 문을 열고 싶을 뿐이다. 그 문을 열어 햇빛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필요 없는 것을 잊은 채 참된 나를 만나 마음의 평안을 얻어 진정한 자유를 얻고 싶을 뿐이다. 그중의 일부만이라도 만족함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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