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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n 25. 2023

세상 모든 만남이 그런 것일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영원불변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변화를 어쩌면 당연히 여겨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도, 그 삶 속에 존재하는 인간도, 그리고 그러한 인간과의 관계도 그렇게 변해가고, 삶의 과정에서 부딪히는 모든 만남도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윤후명의 <로우란의 사랑>은 운명이라 생각되는 만남과 사랑도 꽃이 지듯 그렇게 끝이 나고, 그러한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머리에 맴돌자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찌하여 유독 그녀와 만나게 된 것일까. 숙명이니 섭리니 하는 낱말들은 정말 그럴듯했다. 나는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해서 오히려 막막한 외로움에 휩싸인 느낌이기도 했다. 푸른 바다는 심연에서부터 설레는 사랑의 표상이었다.”


  사랑은 만남에서 비롯된다. 그 만남은 극히 적은 확률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억겁의 시간의 한순간에서 무한한 공간의 어느 한 점에서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엄청난 우연이 필연이 되어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사실이지 난 니가 집을 나갔을 때는 미워할 게 없어져서 늘 맘이 비어 있었다. 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난 줄곧 누군가 미워해야만 직성이 풀렸으니까. 그런데 막상 너밖에는 미워할 사람도 없었던 거야. 믿을 게 없었던 셈이지.”


  하지만 그러한 운명적인 사랑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아니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숭고하고 아름다웠던 사랑도 사라지고 변해가게 된다. 사랑한 만큼 미워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웠던 그 순간들도 서서히 바래져 간다. 그래도 믿었기에 미워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움이라는 감정조차 생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로우란은 서역 땅의 폐허가 된 오아시스 나라였다. 그 여관도 지금쯤 흔적 없이 뜯겼을 것이다. 그 사랑은 끝났다. 나는 로우란 근처에서 발견된 미라를 머리에 떠올렸다. 그 미라를 덮고 있는 붉은 비단 조각에는 천세불변(千世不變)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언제까지나 변치 말자는 그 글자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미라는 미라에 다름이 아닌 것이었다. 미라와 그리고 언제 시들지도 모르는 양파의 하얀 꽃이 피는 나라.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만남인가. 세상 모든 만남이 그런 것인가. 아니, 폐허와 같은 사랑도 어떤 섭리의 밀명을 띠고 있는 것인가.” 


  모든 것은 언젠가 끝이 있기 마련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소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랑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변하기에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만남이 그런 것일까. 처음과 나중이 항상 같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나마 우리의 삶 속에서 아름다웠던 시간들이 있었고, 그것을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있기에 조그마한 위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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