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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l 12. 2023

표준모형과 입자가속기

  표준모형은 빅뱅 직후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우주 초기에 존재했던 물질의 특성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표준모형은 아원자 세계에 대하여 많은 사실을 알아냈지만 몇 가지 단점도 가지고 있다.


  첫째, 표준모형은 중력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중력은 우주의 거시적 거동을 좌우하는 힘이므로, 중력이 누락된 이론은 완전할 수 없다. 물리학자들은 표준모형에 중력을 포함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중력에 양자보정을 하기만 하면 예외 없이 무한대가 튀어나와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 그래서 표준모형으로는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블랙홀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 우주의 오래된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둘째 표준모형은 각기 다른 힘을 서술하는 여러 이론을 인위적으로 묶어놓았기에 부자연스러운 인상을 준다. 


 셋째, 표준모형에는 이론으로 결정할 수 없는 변수가 여러 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쿼크의 질량, 상호작용의 세기 등이 그것이다. 변수의 값을 실험 데이터에 기초하여 손으로 직접 입력한다는 것은 그 값의 출처를 모른다는 뜻이며, 이론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표준모형에는 이렇게 난처한 변수가 20개나 된다. 


  넷째, 표준모형에는 쿼크와 전자, 뉴트리노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 종류나 존재한다. 우주를 운영하는 기본법칙 치고는 너무 많은 것이다. 


  입자가속기는 표준모형의 연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재 가장 큰 입자가속기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로서 과학 역사상 가장 큰 가속기이자 가장 비싼 실험장치이다. 이것을 건설하는 데는 120억 달러가 들었고, 둘레는 약 27km이다.


  이 가속기의 튜브 안에서는 양성자가 거의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되고 있는데, 이들이 반대편에서 오는 고에너지 양성자빔과 정면으로 충돌하여 무려 14조eV에 달하는 에너지를 방출하고 엄청나게 많은 입자를 만들어낸다. 그러고나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컴퓨터가 입자구름을 분석하여 정확한 결론을 내린다. 


  LHC의 목적은 빅뱅 직후의 초고에너지상태를 재현하여 불안정한 입자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2012년 표준모형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던 힉스보존이 발견되면서 LHC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였다. 


  표준모형이 양성자의 내부에서 관측 가능한 우주의 가장자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입자의 상호작용을 설명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문제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물리학자들이 물질의 특성을 연구할 때마다 우아한 대칭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물질의 본성을 서술하는 이론이 볼썽사납다는 것은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양자이론을 아원자입자에 적용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던 물리학자들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양자역학을 적용하여 표준모형과 중력을 하나로 통일한다면 표준모형과 일반상대성이론에 양자보정이 모두 가능한 이론, 즉 만물의 이론이 탄생할 수 있다.


  과거의 재규격화이론은 양자전기역학과 표준모형에서 무한대로 나타난 양자보정을 상쇄시키는 방편이었다. 그 핵심논리는 전자기력과 핵력을 각각 광자와 양-밀스 입자로 표현한 후 계산 과정에서 나타난 무한대를 다른 곳으로 흡수시켜서 유한한 결과가 나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미 검증된 방법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그대로 적용하여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인 중력자를 도입했고, 이로써 아인슈타인이 구축했던 시공간은 수조 개의 중력자 구름으로 에워싸인 곳이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통해왔던 방편이 중력자에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중력자의 양자보정에서 나타난 무한대는 정도가 너무 심했던 것이다. 


  이에 물리학자들은 중력의 양자이론을 구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시도할 수 있는 차선책은 중력을 그대로 놔둔 채 일상적인 물질을 양자화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즉, 중력을 건드리지 않고 별과 은하에 의한 양자보정을 계산하는 것이다. 원자의 양자이론을 바탕으로 양자중력이론으로 가는 길을 모색하기로 한 것이다. 


  그로 인해 우주로 관심을 돌린 물리학자들은 새롭고 신비한 현상을 발견하여 우주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블랙홀과 웜홀, 암흑물질, 시간여행, 우주 창조 가설 등은 이 시기에 양자물리학자들이 양자중력의 차선책을 모색하다가 개척한 분야이다. 


  우주의 신비한 현상들이 새롭게 발견되면서 궁극의 이론은 표준모형의 입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기한 우주 현상까지 설명해야 했다. 또한 초기 우주의 상태를 바로 고에너지 입자가속기에서 만들려고 노력해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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