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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l 15. 2023

음악 같았던 순간들

 돌이켜보면 우리의 인생에서도 음악같이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도 그런 순간이 있기에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그러한 순간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삶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세월이 흘러 지금은 별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인 이모에게도 그녀의 과거 모습에서 음악처럼 좋았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이야기해 주는 소설이다.


  “그래서 따라나섰다가 그만 서귀포까지 가게 됐거든. 맞아, 사랑의 줄행랑이었던 거지. 요즘 같으면 어디 파타고니아나 마케도니아 같은 곳으로 도망쳤을 텐데, 그때는 외국으로 나갈 수가 없었던 시절이니까 나름 갈 수 있는 한 가장 먼 곳까지 간 셈이지. 그렇게 서귀포시 정방동 136-2번지에서 바다 보면서 3개월 남짓 살았어. 함석지붕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행복했으면 함석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음악으로 들렸을까.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기에,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모든 것에 만족하기에, 어쩌면 누구에게는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는 빗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던 것이다. 게다가 점점 더 행복해지기에 빗소리가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들렸던 것이다.

 

  “그가 가리키는 사진 속에는 단발머리를 하고 주먹을 쥔 두 손을 양옆으로 펼친 채 카메라를 향해 돌진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 이십 대 초반 이모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다음 사진에서는 앉은뱅이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서 고개를 돌리고 카메라를 쳐다봤다. 사진 속의 이모는 놀라울 정도로 젊었고, 또 아무런 두려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파멜라 차로 변신하기 이전, 차정신으로 살아가던 시절의 얼굴들.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팔베개를 베고 가만히 누워 밤을 지새우면서도 빗소리를 듣던, 젊은 나날의 조각들. 이모는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봤다.”


  삶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기쁨도 있지만 슬픔도 있고, 만남도 있지만 헤어짐도 있으며, 행복도 있지만 불행도 있기 마련이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만 생각한다면 삶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힘겨울 수 있다. 기쁘고 좋았던 순간들이 언젠가는 있었고, 앞으로 또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기에,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어쩌면 감사할 일이다. 내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태어났는데 그래도 지금은 내 것이 어느 정도는 있기는 하다. 더 많은 것을 바랄 수도 있겠지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음악처럼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도 그렇게 만들 수 있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도 가슴 벅찬 음악 같은 순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삶의 순간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내 인생을 작곡하는 나 자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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