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온 시간들 Jul 22. 2023

엄마의 발톱

  엄마의 발톱을 모조리 다 뽑아버렸다. 아니 뽑은 것이 아니다. 그냥 저절로 빠진 거다. 발가락 끝에 걸려 건드렁건드렁 한 것을 살짝 잡아당기니 다 빠져버렸을 뿐이다. 

“엄마, 이제 시원하지?”

“응, 자꾸 걸리적거려서 불편했는데 다 빼버리니 후련하네.”

 엄마의 열 개 발가락에는 이제 발톱이 하나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나겠지만, 몇 주는 걸릴 것이다.  


  석 달 전 엄마의 안색이 조금 이상했다. 그동안 아버지 암수술 때문에 엄마가 힘드시긴 했지만 그런 피로에서 오는 안색이 아니었다. 마침 엄마의 건강 검진 결과가 있길래 자세히 살펴보았다. 정상적인 수치 아닌 것이 너무 많았다. 검진한 의사의 코멘트에는 대장 쪽 이상 소견이 있었다. 


  바로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소화기내과 예약을 하려 하니 자리가 없다고 해서 마지막 시간으로 부탁을 해 간신히 예약을 잡았다. 대장내시경을 예약한 날 수면 마취를 하고 검사를 했다. 검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의사가 나를 불렀다. 내시경으로 대장 내부를 보여주었다. 엄마의 대장엔 무언가로 가득 차 있어서 내시경이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암덩어리였다.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순간 갑자기 앞이 캄캄해졌다. 의사는 대장내시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그냥 접겠다고 했다.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바로 대학 병원에 예약을 했다. 그동안 진료기록 및 검사 결과를 모두 복사하고, 대장내시경 영상도 CD에 저장했다. 진료의뢰서도 미리 부탁해서 받아 놓았다. 암센터가 있는 병동으로 올라가 자료를 모두 접수시키고 영상도 다시 복사해 담당 선생님이 볼 수 있도록 전달했다. 


  수술할 의사의 첫 번째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가져온 자료와 내시경 동영상을 자세히 보더니 수술 날짜를 바로 다음 주로 잡았다. 내시경 영상에는 아랫부분만 나와 있어 수술하면서 윗부분도 살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진료실에서 나와 수술에 필요한 절차들을 밟았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수술을 위해 기초 검사를 했다. 1동 병원으로 가서 혈액검사, X레이, 폐기능 검사등을 다 하는 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모든 절차를 다 끝내고 나니 4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생사는 종이 한 장 차이인 걸까. 나의 의지로 온 이 세상은 아니지만 머무르고 있는 동안은 힘들지 않게 있다가 갈 수는 없는 것일까. 삶과 죽음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담담했다. 더 이상은 나의 영역이 아니었다. 5시간이 훌쩍 지나 12시 30분이 되었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침대에 누운 채로 엄마가 나왔다.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누워서 나를 찾는 그 눈에 내가 옆에 있음을 확인시켜 드렸다. 그제서야 안심하는 눈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많고, 살아가면서 원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좋은 마음으로 베풀어 주었어도 받은 사람은 그것을 잊어버리고 거리낌 없이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삶은 어쩌면 외롭고도 험한 길로만 점철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기쁨과 행복보다는 슬픔과 불행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믿을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엄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내 모습이 어떻든, 잘했든 못했든,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어느 경우에서나 내 편이 되어 주었던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때 누나는 6학년, 형은 5학년이었다. 누나하고는 5살, 형 하고는 4살 차이였다. 나이 차이가 나서 어렸을 때 누나나 형하고 같이 놀아 본 적이 없었다. 혼자서 놀다가 엄마가 장에 가면 졸졸 따라다녔다. 집에 혼자 있는 것도 무섭고, 같이 놀 사람도 없어서 엄마하고 장을 보러 다녔다. 


  시장에 가면 구경거리가 너무나 많았다. 강아지 파는 사람도 있고, 토끼나 닭을 파는 사람도 있고, 생선이나 야채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재미있고 신기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당시 우리 집에는 할머니까지 포함해서, 아버지 일을 도와주는 형들까지 8명이 살고 있어서 엄마는 매일 장을 보러 다녔다. 물건을 다 사고 나면 엄마 혼자 들고 오기 힘들어 내가 조그만 것 하나라도 들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살아있는 닭을 사 오면, 엄마가 직접 잡아 털도 다 뽑고 저녁에 온 가족이 먹을 수 있게 푹 삶았다. 매일 같이 8명이 먹을 삼시 세끼를 하시느라 엄마는 하루 종일 앉아 있을 새도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엄마와 장을 보러 가는 것이 드물어졌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야간 자율 학습이라고 해서 3년 내내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 오면 11시였다.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학교를 가야 했다. 주말에도 학교에 가서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고등학교 때 엄마와 장을 보러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 엄마와 장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있을까. 


 수술을 한 후 한 달 정도가 지나 다시 병원에 갔다. 의사로부터 수술 경과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대장 40cm 정도를 절제했고, 35개 제거된 림프절 가운데 6개가 양성으로 판정되어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항암치료와 수술 후 관리는 다른 과에서 담당하기에 1년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혈액종양내과로 가서 항암치료 의사를 만났다. 엄마의 나이가 너무 많아 방사선과 주사 대신 복용하는 약으로 일단 시작하자고 했다. 2주 동안 항암제를 아침과 저녁 두 번 먹고, 1주 쉰 다음에 병원에 와서 다시 검사를 하고 경과를 봐서 다시 약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6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다. 항암치료는 사람마다 다르니 치료 과정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다.


  1차 항암 치료가 끝날 때쯤 엄마의 손과 발의 피부가 약간씩 검붉게 변하기 시작하며 커다란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물집이 너무 커져 걷기도 불편해서 물집을 다 터뜨려 짜드렸다. 3주 후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하고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손과 발을 보더니 그렇게 큰 부작용은 아니라고 하면서 저번에 처방받은 약을 계속 같은 양으로 복용하자고 했다. 


  2차 항암 치료가 시작되어 1주가 지나기 시작했을 때 부작용이 갑자기 심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식사를 거의 못했다. 입 안을 살펴보니 혀를 비롯해 입안 전체가 이상해져 있었고 혀가 잘 움직이지를 않았다. 설사를 하루에 5번 이상 하기 시작했다. 손발은 피부가 완전히 검붉게 변했고, 통증이 너무 심해 걷기도 힘들뿐더러 손으로 다른 것을 만지지도 못했다. 2차 항암제를 다 복용하고 약을 끊었는데도 상태는 더 심각해지면서 입 안이 완전히 다 헐어 아무것도 드시지를 못했다. 


  의사에게 엄마의 손과 발을 보여드렸다. 부작용이 갑자기 심해진 상황을 설명했고, 의사가 당분간 항암제 복용을 중단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다. 일주일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엄마를 모시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호전되기는 힘들 것 같아 당분간 병원에서 수액과 영양제를 맞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엄마는 바로 병원에 입원해 링거를 맞기 시작했다. 이미 열흘 정도 먹은 것이 없었고, 매일 설사를 해서 엄마는 탈진 상태였다. 몸 안의 수분이 거의 없을 정도라서 침을 삼키기도 힘들어했다. 손과 발은 이미 부작용이 심해 피부가 갈라져 가기 시작했다.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논바닥이 갈라지는 것과 같이 손과 발이 그렇게 쩍쩍 갈라져 가고 있었다. 수액을 맞으면서도 계속 설사로 인해 화장실을 드나들어야 했다. 


  휴가를 내고 병원에 상주하면서 엄마 옆에서 먹고 자고 했다. 누나가 토요일에 내려와 반찬을 해놓고 아버지 드실 국을 끓였다. 며칠이 지나자 설사가 멎기 시작했다. 손과 발에 통증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다. 퇴원을 누나에게 알렸고 누나가 다시 내려왔다. 열흘 만에 보는 햇빛을 엄마는 너무 감사해했다. 


  집에 와 엄마의 손과 발을 정리해 드리는데 왼쪽 엄지발톱이 거의 다 빠져버린 상태였다. 다른 발톱도 보니 다 빠질 것 같았다. 쩍쩍 갈라진 손바닥과 발바닥을 뜯어낼 수 있는 것은 다 뜯어내고 바세린을 발랐다. “엄마, 이거 그냥 다 빼자. 그게 나을 것 같아.” 그렇게 엄마의 발톱을 다 뽑아버렸다.


  빠진 발톱 밑과 뜯어낸 손바닥과 발바닥 아래에는 새로운 살이 돋아 올라오고 있었다. 아기 피부 같은 생살이었다. 아직 발톱이 하나도 나오지는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새로운 발톱이 나올 것이다. 내가 뺀 엄마의 발톱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웜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