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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l 25. 2023

내 별명은 일빠따

  “민석아, 집합이래.”

  “누가?”

  “심상병이래.”

  “아이고, 왜 심상병?”

  “낸들 아냐? 그 인간 야마 돈 것 같어.” 

  “오늘 무슨 일 있었나?”

  “잘 모르겠어. 웬만하면 내가 감을 잡는데. 감이 안 와. 심 상병이 우리 기수만 보조재 창고로 집합하래.”

  “보조재 창고? 오늘 날 잡았나 보다.”

  “야, 너 내복 2개 입어. 난 이미 2개 입었다.”

  “아! 오늘 다리 아작나겠다.”


  나와 상화가 보조재 창고에 갔을 때는 이미 다른 동기들도 모여있었다. 창고 안에는 희미한 실내등만 켜져 있었다. 모두 일렬로 부동자세를 한 채 심상병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 상병이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야, 불 꺼!”

  부동 자세하던 동기 중 한 명이 부리나케 불을 껐다. 심 상병과 같이 들어온 박 상병은 보조재 창고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심 상병이 부동자세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니네들은 말로 해서 안 되지? 아흐, 진짜 열 받어. 타작을 해 달라는 데 어쩌겠냐? 어? 내 존나게 조져 줄게.”


  박 상병이 창고 구석에서 곡괭이를 들고 와 심 상병에게 건넸다. 왜 박상병까지 와서 설치고 지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둘이 동기면서 마치 박상병은 심상병 따깔이 같았다. 박상병이 건네준 곡괭이 자루를 심상병이 거꾸로 들더니 땅에 대고 쳐서 곡괭이 자루를 빼냈다. 부동자세를 한 채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열 명 남짓의 동기들은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니들 왜 처맞는지는 알고 있지? 모르는 놈들은 나중에 옆에 있는 놈한테 물어봐. 한 명씩 나와!”


  부동자세로 있던 동기들은 선뜻 먼저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머뭇거리던 사이 내가 관등성명을 대며 앞으로 나가 엎드려 뻗쳤다. 심 상병은 내가 맨 처음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왜 니가 나오는 거야?’ 하는 표정이었다. 심상병이 약간 머뭇거리더니 엎드려 뻗친 나에게 곡괭이 자루를 있는 힘껏 내려 조졌다. 

  “퍽”

  “윽”

  곡괭이 자루는 마치 저세상에서 온 불빠따 같았다. 한 대 맞을 때마다 뼈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맞으면서 갑자기 겁이 났다. 이러다 다리가 부러지든지,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간 오늘 진짜 미친 거 아냐?’ 

  나는 죽을 각오로 버텼다. 그게 군대니까. 헌데 내가 예상한 거와는 달리 몇 대 더 때리고는 멈추는 것이었다. ‘어? 왜 이러지? 더 때려야 하는 분위긴데?’ 어쨌든 내 차례는 그렇게 끝났다. 


  내 이후로 다음 차례가 앞으로 나가 맞았고, 그렇게 순서대로 한 명씩 맞았다. 타작이 끝나자 심상병이 곡괭이를 집어던지고 나갔다. 나가는 심상병의 뒤통수에 상화가 엿을 먹였다. 우리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보조재 창고 밖으로 나갔다. 점심시간이 가까웠지만, 누구나 할 것 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 씨발. 진짜 하이바이 스팀 팍팍 들어오네. 우리 왜 맞은 거야? 아는 사람 있으면 얘기해 봐.”

동기 중 가장 맷집이 좋은 일석이마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언제는 이유가 있어서 맞았냐? 심 상병 그 인간, 기분 조지는 일이 있었겠지.”

덩치가 산만한 현태가 이를 갈았다. 


  “기분 조질 일이 뭐야, 대체? 승질 드러운 지한테 옆에 가는 사람도 없는데.”

  “휴가갔다 오면 꼭 그러는 거 같어. 지난번에는 상화 이마빡에 호치키스 뚜뜨려 박았잖아.”

  “이번 휴가갔다 와서 더 설쳐대는 것 같다. 집구석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냐?”

  “무슨 일? 마누라가 도망갔나?”

  “저 새끼 이제 21살인데 뭔 마누라야. 결혼했대?”

  “아이, 새끼, 어둡기는.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너만 모르는구만.”

  “마누라만 있냐. 애도 있구만, 돌 지난.”

  “21살이 애가 있으면 언제 결혼한 거야, 대체?”

  “결혼식을 했겠냐, 그냥 사는 거지.”

  “언제부터 같이 산 거야?”

  “얀마, 넌 산수도 안 되냐? 21살이 돌 지난 애가 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살았겠지.”

  “애도 있는데 왜 도망가?”

  “낸들 아냐? 애 데리고 도망갔을지?”

  “나 같아도 도망가겠다. 저런 그지 같은 새끼하고 같이 살 인간이 누가 있겠냐?”

  “같이 살았으니까 애도 낳았것지. 같이 안 살고 애가 만들어지냐?”

  “그럼, 우린 마누라 대신 화풀이 대상인 거냐?”

  “당연한 거 아니냐? 군대가 뭐 이유 있어서 뚜드려 맞냐?”

  “아, 진짜. 저 인간 어디 다른 데로 가면 안 되나?”

  “누가 아니래냐. 바로 위에 고참이니 제대할 때까지 맨날 이렇게 푸닥거리할 텐데.”


  “야, 근데 너는 평소엔 조용하다가 왜 빠따 맞을 때는 맨날 1번으로 나서냐?”

  상화가 나를 향해 말했다.

  “야, 그래도 민석이가 1번으로 맞으니까 그 정도에서 끝난 거다. 심 상병이 민석이는 좋아하잖아.”

  “그건 그래. 다른 애가 1번으로 나섰어봐. 2배는 더 맞았을걸.”

  그 말이 끝나자 현태가 갑자기 나한테 다가와서 말했다. 

“야, 민석아! 넌 앞으로 빠따 맞을 때마다 무조건 1번으로 나가. 너 싫어하는 사람은 우리 부대에 아무도 없잖아. 니가 1번으로 맞으면 우리 전부 덜 맞는단 말야, 알겠지? 이 엉아가 부탁한다. 응?”

  “아이, 새끼. 니가 먼저 맞어. 등치는 남산만한 놈이 니 반만한 애를 먼저 맞게 하냐? 야, 민석아, 절대 그러지 마. 때리는 놈이 처음에는 힘 조절이 안 되는 거야, 알어? 있는 힘껏 조지는 거라구.”

  “하긴. 심 상병 때리는 거 봤냐? 야구 선수가 홈런 치듯 곡괭이 자루를 야구 빠따처럼 휘두르더라.”

  “나도 민석이 맞는 거 보구 처음에 기겁했다. 다리 안 부러지나 했어.”

  “민석이가 일빠따니까 우리 모두 다리 안 부러진 거다. 잘못했으면 누군가는 부러졌을 거야.”

  “근데 심 상병은 왜 때릴 때마다 몽둥이가 바뀌는 거야? 지난번에 봉걸레 자루, 그 전엔 삽으로 뚜드려 패구, 또 그전에는 개머리판으로 조지구. 빠따 바꾸는 게 취미야?”

 “야, 내가 생각할 땐 곡괭이 자루가 최악이다.” 


 “야, 근데 너는 왜 1번으로 나서냐구?”

 “어차피 맞을 거 빨리 맞구 말지 뭐.”

 “야, 일어나 봐.” 

상화가 내 바지를 벗기려 했다.

  “아이, 왜?”

  “얀마. 니가 젤 세게 맞았어. 바지 내려 봐. 한 번 보게.”

  나는 상화의 등살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내렸다. 내 허벅지는 푸르둥둥 멍이 심하게 들었고, 허벅지 대부분이 엄청 부어올랐다. 일부는 살이 터지기도 했다.

  “와, 환장하것다. 완전 3차원 총천연색이다. 야, 여기는 살도 터졌어, 임마. 조선시대 곤장 맞고 터진 거 같어.”

  “나만 그럴까? 다른 애들도 그렇겠지.”

상화도 일어나 바지를 내렸다. 상화는 내 정도는 아니었다.

  “살이 터지지는 않았네.”

  “그래, 임마. 너는 일빠따라 그렇다구. 야! 너는 다음엔 무조건 젤 나중에 맞어. 알았어?”

  “근데 민석이 의무대라도 가야 하는 거 아냐?”

  “의무대 가면 뭐 하냐? 의무장교도 없는데.”

  “하긴. 의무장교가 자리 지키고 있겠냐? 지금쯤 시내 병원에 가서 알바하고 있을걸.”

  “의무장교는 알바 일당이 얼마 되려나?”

  “다른 사람 대여섯 배는 되겠지.”

  “시내 가서 알바를 하니 우리는 의무대 가도 소용없어. 나도 저번에 갔는데 의무장교 없더라. 의무병한테 장염 걸린 거 같아 배 아프다고 하니까 배꼽에 빨간약 발라주던데.”

  “민석아, 너 괜찮겠냐?”

  “응, 됐어. 낫겠지. 뭐.”


  점심시간이 이미 시작되었기에 모두들 다리를 절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우리 동기는  같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밥을 먹었다. 식당 분위기가 너무 이상했다. 고참들도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밥을 먹으려 의자에 앉았는데 엉덩이와 허벅지가 너무 아파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다. 


  동기들이 밥을 다 먹고 식당 뒤로 몰려갔다.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를 했다. 그러던 중 우리 동기 중에 소위 잘 나간다는 아이들이 자기네들끼리 모여 뭔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일석이와 현태의 눈에 불이 이는 듯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계급장을 떼면 우리 연대에서 두 명을 당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애들이 무얼 하건 맞은 다리에 통증이 멈추지를 않아 관심도 없었다. 그날 저녁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의무대를 갔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군의관은 없었고 의무병이 알약 두 개를 줬을 뿐이었다. 약을 먹었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완전 나이롱뽕 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주가 지나도 심상병한테 빠따 맞는 일이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르나, 웬일인지 심상병은 이후 우리가 제대할 때까지 한 번도 때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군대에서 내 별명은 일빠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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