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으로 족하다

by 지나온 시간들

남의 집 살이를 많이 하기도 했다. 대학 입학해서 서울로 온 이후로 해마다 한 번씩 이사를 했던 것 같다. 싼 월세방을 찾아 살다가 연탄가스도 많이 마시며 살았다. 물론 당시에도 좀 비싼 월세방은 연탄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겨울이면 어머니께서 밤이건 새벽이건 할 것 없이 매일 연탄을 갈려고 주무시다가도 나가셔서 방 세 군데의 연탄을 가는 걸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마음이 쓰렸다. 어머니 도와준다고 연탄을 많이도 깨 먹었다.


자취할 때는 어렸을 적 어머니 연탄 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서 그런지 몰라도 연탄불을 꺼뜨리지는 않았다. 나중엔 연탄을 갈 때 연탄구멍을 아주 미세하게 조절을 하면 몇 시간 후에 다시 갈면 되는지 정확하게 시간 계산까지 되었다. 오전에 일어나 아침밥을 해서 먹고 그날 수업 일정을 확인하여 강의 끝나고 집에 몇 시에 올지 계산을 한 다음에 연탄을 갈았다. 연탄구멍을 조절해서 잘 맞추어 놓고 학교에 갔다 오면 내가 예상한 것만큼 연탄불이 남아 있었다. 자기 전에도 아침에 일어날 시간을 계산해서 연탄구멍을 맞추어 놓고 자면 아침에 일어나도 아직 연탄불이 꺼져 있지 않고 살아 있었다. 거의 예외 없이 30분 전후로 연탄불을 조절할 정도가 되니 번개탄을 하나도 사지 않고도 한 달 이상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게 되었다.


반지하에서 살 때는 집안의 곰팡이 때문에 가슴이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벽 전체가 다 시퍼런 곰팡이였는데 아무리 닦아내도 며칠 후면 다시 곰팡이가 생겨 나중에 아예 포기하고 살았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폐가 왠지 이상하고 숨쉬기가 좀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것이 바로 곰팡이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 가서도 남의 집 살이는 계속되었다. 대학 기숙사는 남의 집 살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어쨌든 미국에 도착해서 처음에는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세계 온 나라에서 온 많은 학생들과 접하며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무수한 일들을 겪었다. 기숙사가 너무 힘들어서 미국에 살고 계시는 한국 재미 교포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방 하나를 얻어 살기도 했는데 그때 정말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다. 버팔로에 가서는 미국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같이 꼬박 1년을 살았는데 정말 완전히 미국 사람처럼 일 년을 살았던 것 같다.


10년 이상을 그렇게 남의 집 살이를 했다. 그것이 나의 삶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내 집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나에게는 맞았는지 모른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은 나를 교만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지금 남의 집 살이는 하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남의 집 살이는 하지 않겠지만,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필요를 느낀다. 그냥 손님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어쩌면 더 현명한지도 모르겠다.


도덕경 69장은

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是謂行無行, 攘無臂, 扔無敵,

執無兵.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주인이 되지 않고 손님이 되며,

나아갈 때는 감히 한 치 전진하지도 않고,

물러날 때는 한 자 후퇴한다고 했다.

이것을 일컬어

가지 않음 없이 가고,

팔이 없는데도 팔을 걷어붙이고,

적대함 없이 적을 내 편으로 만들고,

무기가 없는데도 적을 제압한다고 한다.

적을 가벼이 여기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으니,

적을 가볍게 보면 나의 보배는 거의 다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거병하여 서로 칠 때에도,

전쟁의 슬픔을 느끼는 자가 승리한다.

나의 삶의 주인은 어쩌면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우주의 어딘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생명을 잠시 빌린 건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왔다가는 내 인생의 손님일 수 있다. 손님이기에 조심을 하고 살펴가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연탄구멍을 조심스럽게 맞추어가면서 연탄을 갈듯이 나는 나의 삶의 주인 행세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비애를 느끼지 전엔 내가 나의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주인이 아니기에 함부로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 자신이 나 자신에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지내며, 아니 온 것처럼 고요하고 낮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인생의 손님이요, 주인이 아니다. 나는 이제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내가 없음으로 진정한 내가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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