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린다. 그만큼 사랑도 크다는 뜻이다. 나는 비록 가난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나 크게 애달프다. 사랑은 크면 클수록 너무나도 힘든 것, 운명이 이를 질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사랑이 크다고 한들, 운명에 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음에 잠시 떨어져 지낼 줄 알았건만, 그 사람을 만나기조차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우리의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게 운명은 사랑을 갈라놓고 오직 그리워하는 마음에 혼자서 쓸쓸함을 달랠 길조차 없다.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곳으로 가려고 떠났다. 그리고 진실된 사랑이 언젠간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 그러한 믿음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세상도 필요 없으니 버리고, 오직 진실한 마음만을 바라고 그렇게 떠났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만나 눈이 펑펑 오듯 사랑도 그렇게 축복으로 이어질 것으로 믿었기에 떠났다.
하지만 그 이별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세상을 다 버렸으니, 그녀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가 오기만 해도, 그녀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너무 행복에 겨워 울고 말 터인데. 함께 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그 이별은 마지막이 되어 그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백석은 어느 회식 자리에서 만난 기생 김영한을 진심으로 사랑하였으나, 집안의 반대로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 이후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두 번의 결혼을 하나 모두 실패한다. 오직 그의 마음속에는 김영한밖에 없었다. 고향을 떠나 만주로 가서 둘의 사랑을 이루려 하였으나 운명의 힘을 어쩔 수 없었다. 한국전쟁이 나고 백석은 북한에서 김영한은 남한에서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고 이후 둘은 만나지 못했다.
김영한은 백석을 기다리며 당시 성북동 산골짜기에 음식점을 차렸고 둘은 다시 만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갔고, 분단된 남과 북은 합쳐지지 못했다.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읽고 불교에 귀의한다. 끝내 둘은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백석은 1996년 북한에서, 그리고 김영한은 1999년 남한에서 각각 사망한다. 죽기 전 김영한은 그동안 자신이 직접 경영한 대원각이라는 음식점에서 벌어들인 모든 돈을 법정 스님에게 기부한다. 그녀는 법정 스님에게 그 돈으로 그 자리에 절을 지어달라고 부탁한다. 그 절이 바로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이다.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기부한 전체 금액은 1,000억이 넘는 돈이었다. 천억이 넘는 그렇게 큰돈을 기부하는 게 아깝지 않느냐는 많은 사람의 질문에 김영한은 “자신에게 천억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백석의 시 한 줄”이라고 답했다.
김영한은 죽은 후 화장되어 묘를 쓰지 않고 길상사 경내에 산골(散骨)되었다. 길상사 뒤에는 그녀의 공덕비와 백석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