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기적

by 지나온 시간들

우리 주위에 보면 어려운 가운데에서 정말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다. 서강대 장영희 교수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이 아니면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장애가 있었지만,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를 마치고 모교인 서강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49살에 유방암, 52살에 척추암을 극복하고 다시 강단에 섰으나, 56살에 간암으로 전이되어 59살에 사망할 때까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수필집을 몇 번이나 읽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경우가 드문데 나도 모르게 한번 읽기가 아쉬웠다. 우리의 삶은 정말 소중하다.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내일이 안 올지도 모른다. 나의 삶을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른다.


“돌아보면 그 긴 터널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새삼 신기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지난 3년이 마치 꿈을 꾼 듯, 희꾸무레한 안개에 휩싸인 듯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통증 때문에 돌아눕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일,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백혈구 수치 때문에 애타던 일, 온몸의 링거 줄을 떼고 샤워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일, 방사선 치료 때문에 식도가 타서 물 한 모금 넘기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하며 밥그릇만 봐도 헛구역질하던 일, 그런 일들은 의도적 기억 상실증처럼 내 기억의 한 편의 망각의 세계에 들어가 있어서 가끔씩 구태여 끄집어내야 잠깐씩 회생되는 파편일 뿐이다.”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은 언제나 다가온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 삶에서 어려움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누구든 삶의 과정에서 그러한 어려움에서 비켜날 수는 없다. 힘들겠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해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갑자기 다가온 아픔으로 인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겸손히 우리 삶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낮추어 가며 살아야 덜 후회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세월을 생각하면 그때 느꼈던 가슴 뻐근한 그리움이 다시 느껴진다. 네 면의 회벽에 둘러싸인 방 안에 세상과 단절되어 있으면서 나는 참 많이 바깥세상이 그리웠다. 밤에 눈을 감고 있을라치면 밖에서 들리는 함성 소리, 그 생명의 힘이 부러웠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공간, 그 속을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그리웠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늦어서 허둥대며 학교 가서 가르치는, 그 김 빠진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리고 그런 모든 일상을, 그렇게 아름다운 일을, 그렇게 소중한 일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행하고 있는 바깥세상 사람들이 끝없이 질투나고 부러웠다.”


평범한 일상 자체가 기적이다. 아침에 눈을 떠 밥을 먹고, 출근해서 일을 하고,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와 점심과 저녁을 먹고 퇴근하는 그러한 너무도 평범한 일상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주위엔 너무나 많다. 아파본 사람은 그 일상이 정말 미치도록 그리울 것이다. 우리의 그 평범한 일상은 어쩌면 행복 자체인지도 모른다.


“어부라는 시에서 김종삼 시인은 말했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따뜻한 봄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번개 치는 날도 있고, 며칠씩 계속 비가 오는 장마철도 있고, 찬바람 씽씽부는 추운 겨울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내가 살아있으니 그런 어려운 날도 겪을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어려운 날도 나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은 기쁜 날도 있다. 눈물 나게 기쁜 날을 위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날들이 어려울지라도 하늘을 날 것 같은 기쁜 날을 경험해 보면 그 어려웠던 시절은 단순한 추억일 뿐이다. 그런 기쁜 날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산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엄청나게 위대한 일을 할 필요도 없다. 내가 오늘 하는 일이 가장 위대한 일이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싶다. 나의 도움을 기다리는 분들도 계시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 아닐까? 그렇게 오늘 하루를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힘든 일도 다 지나가고 새로운 기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살아있음은 그 자체가 기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 그 기적을 확실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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