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할머니께선 우리 집에 자주 오셨다. 한번 오시면 누나 방에서 며칠이건 몇 주건 머무르다 가시곤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를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도 10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 남자들은 대부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많은 분들이 60세 전후로 돌아가셨다. 어찌 보면 우리 집안은 장수 집안은 아니다.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친가나 외가 통틀어 가장 고령인 남자로서 거의 20년을 유지하고 계시다. 담배가 뭔지도 모르는 어릴 때부터 집안 어른들이 절대 담배 피우지 말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우리 집안 남자들은 다들 골초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만이 유일하게 담배를 젊었을 때 완전히 끊으셨다. 담배하고 폐암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태어나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다. 군대에서도 보급 담배가 나오면, 바로 옆에 있는 동기나 고참들에게 15갑 모두를 다 나누어 주었다.
할머니가 오시면 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겸상을 하시고 나머지 식구들은 한 상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모든 사람들이 나갔고,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만 남았다. 할머니는 심심해서 나를 데리고 동네 마실을 다니셨다. 할머니 손을 잡고 다니다 보면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그냥 나도 모르게 주무르곤 했다. 내가 할머니 손을 주무르면 그 주름살이 좀 펴질까 싶었다. 할머니는 내가 할머니 손을 주무를 때마다 나를 보고 빙긋이 웃고 하셨다.
할머니는 1901년생이시니 온갖 풍상을 다 겪으셨다. 어릴 때 할머니하고 같이 다닐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의 삶이 얼마나 파란만장했을까 싶다. 할아버지 사이에 12명을 낳으셨다. 아버지가 11번째다. 일본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4.19와 5.16 그 험한 세월을 살면서 어떻게 12명을 다 키워냈는지 나로서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할머니는 내가 아는 아픔만 해도 너무 많다. 6.25 사변 때 막내 고모가 북한 인민군에 끌려갔다. 휴전이 되어서도 막내 고모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채 북한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소식 한 장 없었다. 막내 고모 말고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4명의 자식이 먼저 앞섰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그 고통을 4번이나 겪은 것이다.
할아버지는 환갑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기에 할머니는 25년 가까이를 홀로 사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외롭지 않으셨을까 싶다.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비녀를 머리에 꽂고 계셨다. 한 번도 머리를 자르지 않으셨는지 머리 감으실 때 보면 머리 길이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할머니가 갑자기 집에 오셨다. 연세는 많으셨지만, 아직 정정하셨다. 하룻밤을 주무시고 돌아가실 때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어릴 때 버릇처럼 주름살을 주무르면서 펴 드렸다. 주름살이 많아도 너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인사를 하고 가시는 뒷모습이 그날따라 왠지 마음이 짠했다. 아직까지도 할머니의 그 뒷모습이 기억이 남는다. 그 모습이 내가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몇 주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떤 병환도 없으셨던 것 같은데,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우리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그날 오셨던 것 같다.
지난번 고향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갔다. 고향에 가니 사촌인 미연이 누나와 태신이 형이 계셔서 함께 소주를 사서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뿌렸다. 너무 오랜만에 뵌 듯해서 죄송했다. 산소는 예쁘게 단정되어 있었다.
요즘 어머니 손과 발을 매일 정리해 드리고 있다. 항암치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손과 발이 다 갈라지고 벗겨져서 잘라낼 것은 잘라내고 정리한 후 약을 발라 드린다. 어머니의 손을 보니 할머니 손이 생각이 났다. 어머니 손에 주름도 어느새 이리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속상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 마음을 누르고 어머니께 예쁜 애기 피부같이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할머니가 나에게 빙긋 웃으셨던 것처럼 어머니도 나에게 빙긋 웃으셨다.
내가 잡았던 할머니 손, 그리고 지금 잡고 있는 어머니 손은 주름이 잔뜩 많은 손이지만 그 두 손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하얀 피부의 손이 아닌 주름 가득한 손이지만, 나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