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대장암 수술을 한 후 한 달 정도가 지나 다시 서울대 병원에 갔다. 집도의였던 외과 과장님을 뵈었고 수술 경과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대장 40cm 정도를 절제했고, 35개 제거된 림프절 가운데 6개가 양성으로 판정되어 항암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셨다.
항암 치료와 수술 후 관리는 다른 과에서 담당하기에 1년 후 다시 뵙기로 하고 혈액종양내과로 가서 항암 치료 전문 선생님을 뵈었다. 어머니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방사선과 주사 대신 복용하는 약으로 일단 시작해보자고 하셨다. 2주 동안 항암제를 아침과 저녁 두 번 먹고, 1주 쉰 다음에 병원에 와서 다시 검사를 하고 경과를 봐서 다시 약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8차례 항암 치료를 해서 24주, 그러니까 약 6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 말씀하셨다. 항암 치료 과정 중에 식단과 주의해야 할 것들을 간호 선생님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모시고 약국에 가서 항암제를 사서 다시 청주로 돌아왔다.
1차 항암 치료가 끝날 때쯤 어머니 손과 발의 피부가 약간씩 검붉게 변하기 시작하며 커다란 물집이 여러 군데에서 잡히기 시작했다. 물집이 너무 커져 걷기도 불편하셔서 내가 물집을 다 터뜨려 짜드렸다. 3주 후 서울대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하고 의사 선생님을 뵈었다. 손과 발을 보시더니 그렇게 큰 부작용은 아니라 하시면서 변화 없이 저번에 처방받은 약을 계속 같은 양으로 복용하자고 하셨다. 2차 항암 치료가 시작되어 1주가 지나기 시작했을 때 부작용이 갑자기 심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식사를 거의 못하셨다. 입 안을 살펴보니 혀를 비롯해 입안 전체가 이상해져 있었고 혀가 잘 움직이지를 않았다. 설사를 하루에 10번 이상 하시기 시작했다. 손발은 피부가 완전히 검붉게 변했고, 통증이 너무 심해 걷기도 힘들뿐더러 손으로 다른 것을 만지기도 못하셨다. 2차 항암제를 다 복용하고 약을 끊었는데도 상태는 더 심각해지면서 입 안이 완전히 다 헐어 식사를 전혀 하시지를 못하셨다.
2차 항암 치료가 그렇게 끝났고 다시 서울대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 우선 어머니 손과 발을 보여드렸다. 부작용이 갑자기 심해진 상황을 설명드렸고 의사 선생님이 당분간 항암제 복용을 중단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셨다. 일주일 이상 거의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셔서 너무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를 간신히 차에 태워 다시 청주로 내려왔다.
교회 삼성 가정의학과 집사님께 전화를 드려 상의를 했다. 집에서 호전되기는 힘들 것 같으니 당분간 병원에 입원해서 수액과 영양제를 맞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버지도 혼자 집에 계시니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입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잠시 후 바로 집사님이 전화를 주셨다. 집 앞에 있는 병원에 내일부터 입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 아침 바로 짐을 챙겨 어머니를 모시고 입원할 병원에 갔다.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선생님이 써 주신 소견서를 드렸다. 청주에 오기 전 어떤 치료를 하는 게 좋을지 소견서를 부탁드려서 혈액종양내과 선생님이 미리 써주신 것이었다. 선생님이 보시더니 바로 입원하자고 하셨고, 내가 1인실로 방을 배정해 달라고 했다. 지난번에 서울대에서 2인실에 입원해 있었는데도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입원실로 가서 수액과 영양제를 링거로 맞기 시작했다. 이미 열흘 정도 거의 드신 것이 없었고, 매일 같이 설사를 너무 많이 해서 어머니는 이미 탈진 상태였다. 몸 안의 수분이 거의 없을 정도라서 침을 삼키기도 힘들어하셨다. 손과 발은 이미 부작용이 심해져서 딱딱해지면서 피부가 갈라져 가기 시작했다. 큰 흉년이 들어 가뭄이 너무 오래 계속되면 논바닥에 물이 다 말라 버리고 딱딱해지면서 쩍쩍 갈라지는 것과 똑같이 어머니의 손과 발이 그렇게 쩍쩍 갈라져 가고 있었다. 수액을 맞으면서도 계속 설사로 화장실을 드나드셔야 했다.
내가 병원에 상주하면서 어머니 옆에서 먹고 자고 했다. 누나가 토요일에 분당에서 내려와 반찬을 해 놓고 아버지 드실 국을 끓이고 어머니 손발 정리해드리고 그동안 못했던 집안일을 다 했다. 며칠이 지나자 내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허리 협착증이 심해 병원 간이침대에서 자다 보니 허리가 무리가 된 듯했다. 허리를 펼 수가 없었지만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보시다 못해 교대를 해주시겠다고 오셨다. 허리 물리치료받고 하루라도 집에서 자라고 하셨다. 허리가 더 아프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집에서 잤다. 그리고 이튿날 다시 아버지와 교대를 했다. 어머니 설사가 멎기 시작했다. 손과 발에 통증도 서서히 가라앉아 고통스러워하시던 것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9일이 지났다. 어머니 퇴원을 누나에게 알렸고 누나가 분당에서 다시 내려왔다. 9일 만에 보는 햇빛을 어머니는 너무 감사해하셨다. 그렇게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집으로 왔다. 누나가 먹을 것을 이것저것 잔뜩 해 놓고 어머니 손발을 정리해드리고 다른 집안일 밀린 것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 손과 발을 정리해 드리려고 하는데 왼발 엄지발톱이 저절로 완전히 빠져 있었다. 다른 발톱도 보니 다 빠질 것 같았다. 쩍쩍 갈라진 손바닥과 발바닥을 뜯어낼 수 있는 것은 다 뜯어내고 바셀린을 발라 드렸다. 빠진 엄지발톱과 갈라진 손과 발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뜯어낸 손바닥과 발바닥 아래에는 새로운 살이 돋아 올라오고 있었다. 아기 피부 같은 생살이었다. 그것을 보고 빠진 엄지발톱을 보았다. 아직 발톱이 하나도 나오지는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새로운 발톱이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다른 발톱도 다 빠질 것 같아 보였지만, 다 빠지고 나면 다시 새로운 발톱이 다 나오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확신이 들자 마음에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도 항상 빛은 비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