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펄벅은 부모님이 선교사였기에 어릴 때 중국에 가서 자란다. 대학공부를 위해 1910년 버지니아주 랜돌프-메콘 여자대학에 입학해 심리학을 공부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다시 중국으로 갔을 때 당시 중국 선교를 위해 와 있던 존 벅을 만나 1917년 결혼을 한다. 그리고 1920년 예쁜 딸 캐롤을 낳는다. 펄 벅은 출산과정에서 발견된 자궁암으로 인해 자궁 전체를 들어내야 했고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딸아이와 내가 처음으로 마주 보았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3월의 따스하고 온화한 날 아침이었다. 중국인 친구가 전날 꽃봉오리가 맺힌 자두나무 화분을 갖다 주었는데 그날 아침에는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처음 본 것이 그 꽃이었고 그다음으로 본 것이 아기의 얼굴이었다. 젊은 중국인 간호사가 아기를 분홍색 담요로 싸서 내 앞에서 들어 올려 보여 주었다. 내 아기는 정말 특별하게 예쁜 아기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갓난아기인데도 눈이 지혜롭고 차분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아기는 나를 보고 나는 아기를 보았고 서로 마음을 읽었고 나는 웃었다."
자신의 딸이 커가는 모습을 기쁘게 지켜보던 펄 벅은 시간이 지나자 캐롤에게 어떤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캐롤 벅은 페닐케톤 요증을 안고 태어난 선척적 정신지체아였다. 자궁암과 출산 후 수술의 과정에 따른 약물에 의한 것으로 추정은 되지만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었다. 자신의 딸이 정신지체아라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펄 벅은 백방으로 캐롤의 치료를 위해 노력했지만, 딸아이를 치료할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지능력의 발달이 멈춘 캐롤을 보고 절망에 빠졌던 펄벅은 결국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정신지체인 캐롤을 키우기 위해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내적 어려움을 겪었던 펄 벅은 심리학 전공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가난한 농부로 시작해 후에 대지주가 되는 중국인 왕룽일가의 이야기였다. 이 소설이 바로 불후의 명작 "대지"이다. 이 소설로 펄 벅은 1932년 퓰리처상을 그리고 1938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이후 펄 벅은 딸아이의 아픔을 알기에 집필을 하는 중에도 딸아이와 같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 딸아이를 위해 미국에 자리를 잡은 펄 벅은 1941년 미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인 "평화의 집"을 세워 운영해 나가기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고아들의 입양은 백인아이들만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백인 가정에서 입양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미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거의 버림을 받는 처지였다.
펄 벅은 엄청난 인세를 기반으로 그리고 노벨문학상 작가라는 영향력으로 이러한 편견을 깨나기기 시작한다. 세계 2차 대전, 특히 한국 전쟁 이후 미군과 아시아인 특히 미군과 한국인 사이의 고아가 엄청나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미군의 아시아 지역 주둔으로 인해 미군과 중국인 그리고 미군과 동남아인 사이의 고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이었다.
펄 벅은 그러한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는 백인 가정에 입양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는다. 딸 캐롤이 정신지체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 자신 또한 6명의 고아를 입양한다. 그녀의 노력은 점차 열매를 맺어 미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백인의 가정에 입양될 수 있었고, 나아가 흑인 미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도 입양되기에 이르렀다.
펄 벅은 평소 일제 식민지 통치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녀는 미군과 한국인 사이에 태어난 고아들의 입양에 특히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한국을 소재로 한 <한국에서 온 아가씨>라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펄 벅은 또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씨와 함께 부천 소사동에 <부천 소사희망원>을 열었다. 이곳은 현재 문을 닫았지만 운영기간 동안 약 2,000여 명의 아이들을 돌봐 주었다.
1964년 펄 벅은 "펄 벅 재단"을 만들어 자신의 이러한 노력을 더 확장시켰다. 그녀의 노력으로 전후 엄청난 수의 미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고아들이 가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딸아이 캐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 그 책이 바로 <자라지 않는 아이>이다. 모든 것 받아들일 수 있었던 펄 벅은 전쟁 등으로 태어나 갈 곳 없는 고아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아름다운 글을 남겨주고 1973년 폐암으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