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대인 768년에 태어난 한유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잃었고 3세 때 아버지마저 잃는다. 14세 때는 그의 형마저 죽고 형수 밑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문장에 재능을 보였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31세의 늦은 나이에 진사과에 합격한다.
그는 성격이 강직하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왕에게 충언을 하다가 여러 지방으로 좌천되거나 파직, 또는 재등용을 반복하게 된다. 당시 임금이었던 당나라 헌종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는데 유교를 숭상했던 한유의 상소에 분노하여 그를 사형시키려 하였으나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의 벼슬길은 한마디로 말해 가시밭길이었고, 그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로 인해 관직에 대한 열의를 끊고 오직 그와 절친했던 유종원과 함께 학문에 힘쓰며 후학을 가르치는 데 열중하게 된다.
이후 그는 새벽까지 등잔불을 밝히며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유교를 깊이 있게 연구하였고 맹자의 정치사상을 따르며 인의 도덕을 중시하는 유학의 부흥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그는 당 말 이후 청나라가 등장하기까지의 8백 년 동안 유학의 전성기인 “宋明理學(송명이학)” 시대를 여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고, 산문의 문체를 개혁하여 후에 당송 팔대가로 거듭나게 된다.
후학의 증진에도 힘을 쏟았던 그에게 후대는 “泰山北斗(태산북두)”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는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태산과 밤하늘의 가장 대표적인 북두칠성을 일컫는데, 이후 어떤 분야에서 가장 뛰어나고 존경을 받는 대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한유는 가진 게 없었다. 부모도 일찍 여의었고, 재산도, 집안도, 정말 내세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성격 또한 너무 강직했다. 자신의 뜻과 다르면 최고 권력자인 임금에게도 거침없는 충언을 했다. 그로 인해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알아주는 이 없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충실했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보니 길이 열렸다. 그 길을 꾸준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는 태산북두가 된 것이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나의 진실과 나의 존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하거나 절망을 할 필요도 없다.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존재는 나를 위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어 주위에 선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너무나 훌륭할 것이나, 그것이 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그리고 누군가는 나를 알아주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유와 유종원처럼 나는 그와 평생을 같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면 나는 진정으로 나의 갈 길을 자유롭게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으로부터 계속 인정을 받고자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롭고 독립적일 수 있을 때 태산북두의 가능성이 나에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