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주위의 사물이나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다시 말하면 그 실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우리가 끼고 있는 색안경을 통해 다른 것들을 보기 때문이다. 그 안경은 우리의 무의식이 될 수도 있고 우리의 편견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 주위의 어떤 상대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엔 나의 색안경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모든 면이 다 나쁘게 보인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보았을 때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것은 오로지 나의 잘못이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 그리고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 실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끼고 있는 색안경 때문에 그렇다.
더 큰 문제는 우리 본인이 그러한 색안경을 끼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제일 정확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이미 마음속에 결론을 내리고 있기에 더욱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로 인해 오해가 발생하게 되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가 하면 회복될 수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이 실재를 아예 새로운 것으로 만들기에 그렇다.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받은 표상이건 우리의 내면이나 무의식에서 떠오른 표상이건 그 실재와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하면 나의 세계는 그 표상에 갇히게 되고 만다. 내가 스스로 나의 세계를 제한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소통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과 소통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해야 한다. 내가 바라보는 것들이 진정한 실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며, 내 주위의 사람들과 아니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상대방과도 서로 대화해야 한다. 그로 인해 나의 색안경을 정확하게 알아, 더 이상 그 색안경을 끼고 다른 것들을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소통과 대화가 없는 이상 그는 홀로 고립되어 더 어두운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을 정말 좋아하면 그의 모든 것이 다 좋게 느껴진다.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을 싫어하게 되면 그의 전부가 다 싫어진다. 자신이 분노와 증오의 안경을 쓴 채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 그의 모든 것이 불쾌하고, 마음에 전혀 들지 않고 비겁하고 간사하며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스스로 그 진실과 멀어지게 만들고 마는 것이며 자신 스스로 우상을 만들고 있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과 그 실재와의 차이를 어느 정도 본인이 알 수 있어야 하며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는 언젠가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실재가 없는 허상의 세상에서 그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보는 사물이나 사람 자체가 내가 만들어 낸 표상에 불과하다면 그로 인해 그는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표상에 의해 자신이 상처를 받는 것만큼 슬픈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내가 끼고 있는 색안경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나를 정확히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복잡한 세상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한 상태에서 내가 판단하는 세상은 결코 올바른 세상이 아닐 것이다.
내가 나를 정확히 바라볼 수 있을 때 세상에 나에게 뚜렷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거울 앞에 서서 나의 모습과 내가 끼고 있는 색안경이 어떤 것인지 가끔 한 번씩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