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온 후 중력파의 존재에 대해 예측하였으나 중력파와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너무나 약해 아인슈타인 자신도 실험적 관측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로부터 100년 후 2015년 드디어 중력파를 관측하게 되었다.
중력파란 크기가 너무 작아 그 신호를 직접 검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력파는 질량이 큰 별들에 의한 급격한 중력의 변화가 파동의 형태로 시공간을 거쳐 전파되어 나간다. 별들의 질량이 크면 클수록 더 강한 세기의 중력파를 만든다. 잘 알려진 중력파의 발생원은 쌍성계이다. 공전하는 별 사이의 거리와 회전 주기에 따라 발생하는 중력파의 주파수가 달라진다. 그 세기는 별까지의 거리와 질량에 의존한다.
다양한 중력파원을 발생하는 천체를 관측하는 것은 하나의 중력파로는 불가능하며, 발생하는 중력파의 주파수와 세기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중력파 검출기에 최적화된 천체를 대상으로 하는 중력파원을 목표로 관측한다.
중력파의 검측은 실험적으로는 시작된 지 60년 만에 결과를 얻게 되었고 이 발견은 지난 100여 년의 과학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중력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던 때부터 실험적인 발견이 완성되기에 있어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과 땀으로 이루어졌기에 그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05년 7월 프랑스의 과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중력은 공간을 통해 파동의 형태로 진행한다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그는 이 파동의 이름을 “중력파”라 이름 지었고 이것이 중력파의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이후 10여 년에 걸쳐 이 이론을 더 확장시켜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하게 된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에 대한 이론이지만 뉴턴의 그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뉴턴의 중력 이론은 물질과 물질의 상호작용이라고 설명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중력은 시공간의 곡률이며 이 곡률은 공간에 존재하는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론을 완성한 후 푸앵카레가 주장한 바와 마찬가지로 중력파의 존재가 가능할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는 가속된 전하에 의해 만들어지는 전자기파처럼 중력파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후 아인슈타인은 그의 학생이었던 네이단 로젠, 레오폴드 인펠트와 함께 중력파의 수학적인 해를 찾으려 노력했고 많은 우여 곡절을 겪은 후 1936년 중력파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다.
중력파가 이론적으로 존재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실험적으로 그 존재를 증명할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중력파를 실험적으로 관측하는 데 있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실험적으로 측정 가능한 양을 계산할 수 있는 관측자가 어느 좌표계에서 있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물리학에서는 좌표계는 계산상 편리함으로 인해 선택된다. 실질적으로 관측자는 물체의 운동과 물체 자체의 시간과 상관없이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좌표계를 선택한다. 이러한 문제를 보정하기 위해 1956년 펠릭스 피라니는 “리만 텐서에 있어서 물리적 중요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이 논문은 중력파에 적용할 수 있는 물리적 관측 가능한 양에 대한 수학적 형식을 만드는 것에 대한 내용으로서 상당히 중요하다. 그는 이 논문에서 중력파는 공간을 통해 진행해 가면서 입자들을 앞과 뒤로 움직이게 한다고 논하였다.
그러는 사이 중력파의 논의에서 또 하나의 쟁점은 중력파가 에너지를 운반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일반 상대론에 있어 시간은 좌표의 일부이고 그것은 위치와 관계하고 있다. 이는 에너지는 시간과 대칭성이 있다는 보존 원리와 상충하므로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휘어진 시공간은 국소적으로는 편평하므로 에너지는 국소적으로 보아서는 보존된다고 생각하였다. 이 논의는 195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이는 리차드 파인만에 의해 중력파는 에너지를 운반하는 것으로 결론 지어졌다.
1957년 미국 노스 캘로라이나의 차팰힐에는 중력파의 실험적 증명을 위해 이 분야의 전문가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은 실질적인 중력파 검증의 시작이라 할 수 있어 의미가 있다. 이 모임에서 참석했던 요셉 웨버는 중력파의 실험적 관측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이를 위해 어떤 실험적 기구들이 필요하며 어떻게 중력파를 실험적으로 증명해 낼지 연구에 몰입하게 된다. 1960년 그는 중력파의 실험적 관측에 관한 실질적인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 논문에서 기계적인 장치에 유도된 진동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중력파를 실험적으로 관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여기서 큰 금속의 원통형 바를 만들고 중력파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명적 진동을 관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제안에 따라 1966년 원통형 바가 실질적으로 완성되었고 본격적인 중력파의 실험적 관측에 들어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는 많은 노력으로 1969년 중력파의 검출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하였으나 다른 과학자들의 검증에 의해 실험에 문제 있음이 밝혀져 실질적인 중력파 관측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에 이르러 중력파의 실험적 관측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웨버의 실험을 개선하려는 많은 노력이 시작되었다. 실험적 개선을 위한 노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간섭계로 인한 관측일 것이다.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한 중력파 검출에 대한 제안과 연구는 1960년대 시작되었다. 그 시도를 처음 한 것은 러시아 과학자 게르텐슈타인과 푸스토보이트였다. 그들은 마이컬슨의 간섭계의 구조가 중력파에 민감하게 작동하는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레이저를 이용하면 양쪽 팔의 길이가 10미터의 간섭계를 가지고 의 경로 차이를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 후 간섭계를 이용한 중력파 검출에 있어 중요한 공헌을 한 와이스는 중력파 검출의 실현을 위해 수 킬로미터의 팔을 가진 간섭계가 가져야 할 최적의 조건, 민감도, 이들을 나타내는 각종 잡음 원들의 분석을 수행했다. 와이스는 1972년 한 보고서에서 구체적으로 간섭계가 가지는 잡음 원들의 분석과 그 성능의 한계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는 중력파를 실제적으로 검출할 수 있는 3000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생각하였으나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간섭계를 이용한 실험은 단색광 즉 동일한 파장을 지닌 빛을 레이저로 방출시켜 스플리터의 표면에 닿게 하고 이 스플리터는 일부는 반사시키고 일부는 통과시켜 통과된 빛과 반사된 빛이 각각 거울에 닿은 후 반사되어 간섭을 일으킨 후 검출 장치에 기록되는 장치이다. 실험 처음에는 두 개의 거울이 스플리터와 같은 거리에 위치시킨 후 나중에 거리를 약간 조정하면 간섭 된 빛의 세기에 변화가 생기고 이를 관측한다. 중력파가 이 간섭계를 통과하면 스플리터와 거울의 거리 조정에 의해 중력파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빛의 세기에 차이가 생기게 되며 이는 중력파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장치는 중력파 검증에 있어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되어 여러 연구기관에서 실행하였다. 일반적인 중력파의 진동수가 100Hz라면 간섭계의 길이는 약 750km가 돼야 하므로 아주 먼 거리를 두고 장비를 설치하여야 한다. 이 간섭계를 이용한 실험 장치는 웨버의 학생이었던 로버트 포워드에 의해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하지만 그 기기는 너무 작아 검출기로서 중력파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75년 실험 물리학자였던 레이 와이스와 중력에 대한 이론 물리학자인 킵 손은 중력파에 대해 공동으로 관심이 있어 같이 협력하기로 하고 중력파에 대해 이미 경험이 많은 전문가인 로날드 드레버를 같은 팀으로 참여시킨다. 그들은 칼텍과 MIT에 중력파 레이저 간섭계를 설치하고 운영하며 계속 발전시키고 보완시켜 나간다. 그러던 중 1983년 그들은 미국 과학 재단으로부터 1억 달러에 이르는 연구비를 책정 받아 반경이 수 km에 이르는 레이저 중력 검출 장치를 만들기에 이르는다. 이 프로젝트가 바로 “Caltech-MIT”라 불리는 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 wave Observatory)”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앞의 세 사람 킵 손, 레이 와이스 그리고 로날드 드레버가 이끌었다. 허지만 와이스와 드레버의 의견이 많이 충돌했고 이견이 많아 나중에 보그크가 프로젝트의 단일 책임자로 고용되어 이 프로젝트를 지휘하게 되면서 1988년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하게 되었다. 연구하는 중간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보그트가 사의를 표하고 드레버가 연구진에서 탈퇴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런 커다란 프로젝트에 많은 경험이 있는 고에너지 입자 실험물리학자인 배리 바니쉬가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게 되면서 LIGO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하나의 관측소를 워싱턴주 핸퍼드시에 하나는 루이지애나 주의 리빙스턴 시에 1997년에 설치를 완성하였다. 워싱턴 주의 핸퍼드와 루이지애나 주의 리빙스턴은 약 3,50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이 거리 차는 중력파가 쓸고 지나갈 때 약 100분의 1초의 시간 지연 효과를 만들어낸다. 라이고의 최종 공사비용은 2억 9200만 달러였고, 추후 업그레이드 비용으로 8,000만 달러가 들었다.
실험 장치들과 설비들이 계속 보완되고 발전되면서 2002년부터 본격적인 작동을 시작하게 된다. 2010년까지 8년 동안 실험이 진행되었지만 중력파 검출에 실패하면서 5년 정도 작동을 멈추고 모든 장치를 재점검하면서 업그레이드 작업을 하고 다시 관측에 들어가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15년 9월 18일 인류 최초로 중력파 관측에 성공하게 된다. 이 중력파는 태양보다 30배 무겁고 지구로부터 13억 광년 떨어진 두 개의 블랙홀끼리 충돌하면서 발생한 중력파였다. 관측 이후 진정한 중력파인지 검증 작업이 이루어졌고 이듬해인 2016년 2월 인류 최초로 중력파가 관측된 것이 증명되었다. 이는 이론적으로만 예견했던 중력파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검출한 것이다. 이 중력파는 두 개의 블랙 홀로부터 기인한 것으로써 블랙홀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쌍성 블랙홀이 서로 병합하여 하나의 블랙 홀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중력파의 신호였다. 이 공로로 2017년 킵 손과 바니시 그리고 바이스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