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내편 제4편은 인간세(人間世)라 불린다. 인간세란 글자 그대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말한다. 장자가 살아 있었을 당시는 중국 내륙 전체에서 무수한 전쟁이 있었다. 일 년에도 수 차례의 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남자들이 전쟁에 동원되어야 했다. 전쟁에 승리를 위해서는 체격도 좋고 힘도 좋은 남자들이 유용성의 사회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전쟁에서 공을 세울 수 있고 그로 인해 재물도 얻을 수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장자는 지리소라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지리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支離疏者 頤隱於臍 肩高於頂 會撮指天 五管在上 兩髀爲脅。挫鍼治繲 足以餬口 鼓筴播精 足以食十人。
上徵武士 則支離攘臂而遊於其間 上有大役 則支離以有常疾不受功 上與病者粟 則受三鐘與十束薪。
夫支離其形者 猶足以養其身 終其天年 又況支離其德者乎.
(지리소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턱이 배꼽에 박혔고, 어깨는 장수리보다 높으며, 상투는 뾰족하게 하늘을 가리키고 오장은 머리 위에 있으며, 두 다리는 바로 갈비뼈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바느질이나 옷 빨래로 호구지책을 삼기에 넉넉했고 키를 들어 곡식을 까불면 여남은 식구를 먹이기에 넉넉하였다.
그리고 나라에서 무사를 징발할 때면 그는 언제나 팔을 휘두르면서 그 장소를 돌아다닐 수가 있었고, 나라에 큰 부역이 있을 때에도 정상이 아니라 하여 언제나 면제되었다. 그러나 나라에서 병자에게 곡식을 나누어 줄 때에는 그는 삼종의 양식에 열 단의 나무도 배급받았다.
이렇게 그는 병신이면서도 오히려 무사히 자기 자신을 보신하여 천년을 누릴 수 있었거늘 하물며 도덕적으로 불완전한 사람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
장자는 왜 지리소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일까?
지리소라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나 비정상적인 사람이었지만, 장자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판단하는 유용성이라는 것은 하나의 관점에 불과한 것이다. 전쟁이라는 시대에 체격이 건장한 사람이 유용하다 생각했지만 그러한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거나 다칠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 공을 세워 재물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해마다 일어나는 전쟁에 그는 또 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 결국은 전쟁터에서 그 젊은 나이에 죽거나 크게 다칠 수밖에 없게 된다. 당시 사회에서 기준으로 삼았던 유용하다는 것이 오히려 그의 목숨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의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획일적 기준은 장자 시대의 상황과 같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기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진정으로 현명한 것인지는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그러한 기준은 단순한 하나의 관점에 불과할 수 있다. 그 기준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또한 그 기준이 맞는 것인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지리소는 당시의 기준에 맞지 않았던 사람이기에 전쟁에 나가지 못해 목숨도 구하고 평안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획일된 기준을 추구하는 이러한 것을 탈피해야 한다. 생각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관점의 자유가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지 상관없이 우리에게 더 깊은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