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바라보며

by 지나온 시간들

언젠가부터 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꽃도 지나가다 한 번씩 보고, 길에 가다가 심어진 꽃을 보기도 했다. 나는 예전에 꽃의 존재를 몰랐다. 있어도 나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마음의 눈에 꽃이 보인 것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꽃을 바라보아도 그 꽃이 어떤 꽃이건 상관없이 싫지가 않다. 꽃은 변함없이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 싫은 표정 하나 없이 그 자리에서 꽃을 바라보는 나룰 향해 항상 웃고 있다.


꽃도 피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했으리라. 하지만 일 년 중 꽃이 피는 시기는 정해져 있고, 그 기간도 아주 짧은 편이다. 활짝 나에게 웃음을 안겨주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 버리고 만다. 힘들게 피었건만 오래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힘들게 피었건만 왜 그리 짧은 시간만 존재하고 마는 것일까? 나에게 함박웃음 안겨주고 자신은 그리도 빨리 사라지고 마는 것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꽃도 그 짧은 시간 존재하기 위해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고,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지만 피어 있는 동안은 웃고만 있다. 그래서 내가 언젠가부터 꽃이 좋아지기 시작했는가 보다.

정목 스님의 책 <꽃도 꽃피우기 위해 애를 쓴다>는 스님의 따스한 마음이 한가득 담긴 수필집이다. 한 문장씩 꼼꼼히 읽을 때마다 내 마음이 밝아옴을 느꼈다.

"그러나 햇빛을 향해 두 팔 뻗으며 활짝 웃음 짓는 사람은 곧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하는 소나무처럼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예전에 나는 잘 웃지 않았다. 웃을 수 있는 일도 없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햇빛을 바라볼 시간도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볼 시간도 없었다. 내가 웃지 않았기에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지 못했다. 그게 가슴이 아프다. 나는 왜 나의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살아오면서 그리 많이 웃지 않았을까?

"지금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우리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진짜 더 큰 문제는 문제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그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입니다. 왜 우리는 이 세계에 사는 짧은 순간들을 이런저런 문제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걸까요?"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왜 그리 고민하고 근심을 하며 걱정으로 밤잠도 이루지 못했던 것일까? 나의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 문제라고 생각하니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괜히 심각하게 고민하고 안달하며 조급해하다 보니 그것이 아예 습관이 되어서 문제가 아닌 것도 문제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웃음을 빼앗가 가 버리고 말았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수많은 반응들을 내려놓고,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여 보세요. 밉다, 보기 싫다, 힘들다 생각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아무런 해석을 하지 말고 끌어안아 보세요."

많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그러한 것들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냥 받아들였으면 아무런 고통이나 아픔이 아니었던 것을 나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의해 나의 마음이 무겁고 힘겨워졌던 것이다. 그냥 그러려니 해 버리면 그동안 겪었던 고통이나 어려움들이 전부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나는 왜 그리도 그 많은 것들을 나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해결하려 했던 것일까? 나의 마음이 더 넓었더라면 그러한 것들이 다 그냥 지나갈 수 있었을 것을 그러지 못했기에 나는 웃지 못했던 것 같다.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자신의 기준으로 그 사람을 재어보고 판단하는 습관을 끊어버릴 때 비로소 상대의 내면에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외로운 영혼을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전부 외로운지 모른다. 그들의 외로움을 볼 수 있는 나의 영혼의 눈이 없었기에 나는 그들을 나의 기준으로만 판단해 버려 그들에게 웃음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나의 기준이 옳지 않았을 텐데 나는 왜 그다지도 나의 기준을 고집했던 것일까?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니 나의 미소가 사라졌던 것이다.


아주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나도 많이 웃고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이 무서웠고 가까이할 수가 없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만의 방어벽이 생겨버려 그로 인해 나의 웃음이 사라져 갔던 것 같다. 그러한 방어벽이 나의 얼굴에서 모든 웃음을 다 빼앗아 가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로 인해 나의 영혼의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의 기준이 확고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영혼의 눈을 다시 떠야 할 때가 되었고, 나의 기준이 아예 없애 버려야 할 때가 왔다.

"웃어야 합니다. 웃고 미소 짓는 그 행위는 자신에게 닥치는 인생의 모든 것을 축복처럼 즐길 수 있는 힘을 키워줍니다. 운동으로 근육이 단련되듯이 편안하고 고요한 호흡과 웃음은 유약한 마음을 넉넉하고 고요한 호흡을 하며 삶에 다시 물을 부어주세요. 그러는 동안 슬며시 웃음이 찾아오도록 마음을 느슨하고 낙천적으로 풀어놓아 주세요. 많이 웃고 미소 짓는 동안 우리는 행복과 하나가 됩니다."

이제는 예쁜 꽃처럼 웃으려 한다. 나에게 어떤 일이 다가와도 꽃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냥 웃으려 한다. 그러한 웃음이 나에게 행복을 준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웃어야 나의 주위 사람들도 웃을 수 있다. 일 년 중 그 많은 수고를 하고 난 후 단 며칠 동안만 피는 꽃들도 그냥 그렇게 웃고 지는데, 내가 왜 그것을 못 하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웃을 수 있도록 해주신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여러 명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꽃과 같은 분들이다. 그리고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 나도 이제 그런 분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려 한다. 그것이 나의 행복이고 그분들에게도 행복이 되길 바란다. 이제 나는 꽃처럼 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