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회귀

by 지나온 시간들

“영원회귀(The eternal recurrence of the same)”란 동일한 것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조합은 한 번씩은 일어나게 될 것이고, 시간에 따라 이는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우리의 삶에서 많은 것들이 계속 반복됨을 의미한다. 삶은 그래서 니힐리즘적이다.


“오, 사람아! 너의 삶 자체는 마치 모래시계처럼 되풀이하여 다시 거꾸로 세워지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또 끝날 것이다. -네가 생겨난 모든 조건들이 세계의 순환 속에서 서로 다시 만날 때까지. 그 사이의 위대한 순간의 시간, 그다음에 너는 모든 고통과 모든 쾌감과 모든 친구와 적과 모든 희망과 모든 오류와 모든 풀줄기와 모든 태양 빛을 다시 되찾을 것이다. 모든 사물의 연관 전체를 되찾을 것이다. 네가 하나의 낟알로 들어 있는 이 고리는 항상 다시 빛난다. 그리고 인간 존재 전체의 모든 고리 속에는 항상 어떤 순간이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는 단 한 사람에게, 그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결국 모든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생각, 즉 모든 것의 영원회귀라는 사상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인류에게 매번 정오의 순간이 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중에서)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직장에 가서 비슷한 일을 하고 같은 동료들과 지내며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하고 같은 길을 거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이나 다른 일을 하다 밤이 되면 잠을 잔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이다. 집안일도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 돌보고 오늘도 내일도 어떻게 보면 똑같은 일의 반복일 뿐이다. 이런 생활의 반복이 10년 20년 그리고 30년이 지나면 은퇴를 하고 이제는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오전이 지나 점심이 되면 밥 먹고, 오후가 지나 저녁이 되면 밥 먹고 그리고 텔레비전 조금 보다 밤이 돼서 자고 다음날도 똑같은 일상의 반복일 뿐이다.


이런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우리는 삶의 가치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영원회귀는 이러한 우리 삶의 단면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사람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좋아했다가 싫어졌다가 친해졌다가 싸우다가 사랑했다가 미워했다가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또 헤어지고 이러한 삶의 순환은 영원회귀 사상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삶이 중요하다면 똑같은 것의 이러한 반복이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계속되는 일상의 반복을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가운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일까?


답은 하나밖에 없다. 파괴다. 그리고 창조다. 나의 삶의 영원히 계속되는 일상을 하나씩 깨뜨리지 않고는 나는 그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해 가는 다람쥐가 쳇바퀴 도는 것과 마찬가지인 기계적인 인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엄청난 것을 파괴하거나 위대한 것을 창조하지는 못해도 나만의 파괴와 창조가 나의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처음도 없고 끝도 없고 무엇이 먼저인지 무엇이 나중인지도 모른 채 그저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것은 나밖에 없다. 나의 비록 작은 파괴와 창조는 나 자신을 현재의 순간에 존재할 수 있는 실존적 자아로 만들 수 있다. 그 파괴와 창조가 거창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저항 없이 받아들이려 한다. 거기에 나의 존재적 의미가 있으며 삶의 가치 또한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10428_202636722.jpg


이전 01화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