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내면은 너무나 확고해서 웬만한 일로 인해 잘 변하지를 않는다. 자신이 항상 옳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며 다른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세계에 갇혀 다른 세계를 잘 알지를 못하며 자기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것이 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계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이러한 인식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우리는 방황하는 가운데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고 넘어설 수 있다.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과제, 천명, 과제의 운명이 평균을 상당히 넘어선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과제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존재에 대한 오해조차 적절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길의 우회, 옆길로 새기, 주저함, 소심함, 이 과제에서 동떨어진 과제로 소모된 진지함이라는 점에서 존재에 대한 오해는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위대한 지성, 심지어 최고의 지성이 나타난다. 결국 ‘너 자신을 알라’가 자신을 잃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치유책이 되는 지점에서 자기 상실, 자기 망각, 자기 오해, 자기 가치의 저하, 자기 협소화, 자기 평범화가 이성 자체가 된다. (이 사람을 보라, 니체)”
우리는 변해야 한다. 항상 변할 준비를 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과거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라고 한다면 더 나은 모습으로 되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항상 가던 길을 벗어나 옆길로 가볼 필요도 있다. 그 길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길로 가본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탐험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길로 기꺼이 가봐야 한다. 안이함에는 발전이 없다. 새로운 시도가 새로운 기회를 부여한다. 그 기회를 자신의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처음 가는 길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나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헤매다 보면 자신의 길을 확실히 찾을 수도 있다. 그러한 경험이 나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나를 위한 모험은 그래서 필요하다. 겁 없이 그러한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해, 보다 나은 나 자신을 위해 기꺼이 그러한 길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