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빈 민스키는 1927년 태어나 인공지능 분야를 개척한 과학자이다. 그는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MIT에서 인간의 학습을 모방한 기계 학습, 상식 추론, 계산론적 신경과학 등을 연구했다. 촉각을 느끼면서 물건을 들어 올리는 로봇 팔, 로봇에게 있어서 눈 역할을 하는 시각 스캐너, 가상현실 기기에서 사용되는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등은 그가 개발한 것이다.
그가 쓴 <마음의 사회>는 뇌과학, 인공지능 분야의 가장 대표적인 책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단순히 인공지능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대하여 논한다. 이 분야의 선구자였기에 가능한 저술이다. 이 책에서는 지능이 실제로 무엇인지, 이것을 인공적으로 어떻게 구현 내 내야 하는지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마음에 대한 제대로 된 이론을 구축하려면 적어도 세 등급의 시간으로 묶어 내야만 한다. 수십억 년 동안 천천히 흐르면서 우리의 뇌가 진화해 온 시간, 빠르게 잠깐 동안 지나가는 유년기의 몇 주일 내지는 몇 달, 그리고 그 중간쯤 되는, 우리의 생각이 성숙해 온 수 세기에 걸친 역사의 시간. 물질적으로 보이는 뇌는 어떻게 사유와 같은 영적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이 물음은 과거에 많은 사상가들을 괴롭혔다. 사유의 세계와 사물의 세계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어떤 식으로도 서로 작용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사유가 그 밖의 모든 것들과 전적으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한, 출발점을 찾을 길이 없는 듯했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가 마음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할까? 생각한다는 것은 물질의 세계보다는 다른 영적인 세계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당신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이러한 절차들이 일어나는데, 그 절차 중 어느 것도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신이 그 절차들을 생각하게 되면, 오히려 말하기 자체가 안된다. 어떠한 종류의 행위자들이 낱말을 선택해서 당신이 의미하고자 하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걸까? 그 낱말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어구와 문장을 형성하며, 어떻게 각 낱말이 다음 말로 연결되는 걸까? 당신의 마음 내에 어떤 행위 기구들이 있어 당신의 말함이 순서를 따르게 만들며, 또한 당신이 그 말을 누구에게 했다는 것을 되새기는 걸까? 당신의 말을 듣는 사람이 방금 새로 들어온 경우 외에, 당신이 했던 말을 계속 되풀이한다면 당신은 얼마나 바보 같을 것인가?”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 메커니즘으로 인해 우리는 언어활동을 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러한 언어는 우리의 인지 작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우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지능이 어떠한 형태로 작동하여 그러한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의식이라 일컫는 어떤 절차들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대체로 그 절차들이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알 수 있게끔 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자각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평가는 그다지 받아들일 만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식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천재가 되는 데 뭔가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추정한다. 돋보이는 자질들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으로 배우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많이 배우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배운 것을 잘 다루어야 한다. 거장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상위 수준의 전문적이고 특별한 어떤 요령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배운 것들을 조직하고 적용하는 힘을 발휘한다. 천재적인 일들을 창조해 내는 체계들을 산출하는 것은 바로 숨겨져 있는 정신적 조율 방법이다.”
우리들의 의식이란 무엇일까? 무의식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마음과 의식 그리고 무의식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것들이 단순히 신경조직에 의한 물질적인 상호작용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영적인 것과도 연합되어 있는 것일까? 그러한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그동안 축적된 지식은 어떻게 새로운 조합을 이루어 내어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메커니즘이 바로 인공지능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마음이 생각하려면, 자신의 정신적 상태들을 구성하는 파편들을 갖고서 마법을 부리듯 조작을 해야 한다. 방에서 가구를 재배치하기를 원한다고 해 보자. 당신은 가구들을 계속해서 옮기면서 주시한다. 방의 어느 구석에서 다른 구석으로, 그런 뒤 방의 중앙으로 시선을 옮긴다. 또 선반 위에 있는 어느 물건 위에 조명이 비치게 하면 좋을지 궁리할 것이다. 여러 발상들이 떠오르고 여러 영상들이 떠오르면서 서로를 방해할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당신이 온 마음이 하나의 세부 사항에 집중되는 것 같기도 할 것이고, 다른 순간에는 당신의 온 마음이 처음부터 왜 그 방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가에 머물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거나 생각할 때 마음속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는 생각들을 서로 연결하기 위해 우리는 이미 일깨워진 어떤 정신 활동들을 활용하는데 필요한 대명사 같은 장치들을 활용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러한 정신 상태의 단편들을 붙들어 여기저기로 옮길 수 있는 일시적인 손잡이로 활용할 수 있는 기구를 갖추어야 한다. 나는 그 손잡이들이 언어에서 쓰이는 대명사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고 본다. 그러한 유사한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손잡이를 ‘대리행위소’라 부르고자 한다.”
인간은 분명 생각하는 동물이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자세히 관찰해 보면 생각의 메커니즘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은 순차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이디오로 인해 그 순간 새로운 창조를 해내기도 한다. 이러한 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구현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인공지능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앎>은 진정 무엇을 의미할까? 메리가 세상에 대한 어떤 질문에 대해 실제로 어떤 실험도 하지 않고서 대답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우리는 메리가 세상에 관한 그 일들을 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에게나 나에게 있어 잭이 ‘메리는 기하학을 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말만으로는 메리가 원이 사각형이라고 믿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통의 아이들은 동일한 종류의 물리적인 대상들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인간의 마음이 대상에 관한 개념을 타고나기 때문일까? 우리들 각자는 어떤 다른 개인들에게 애착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사람이라는 개념과 사랑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유전됨을 의미할까? 모든 인간 아이들은 물리적인 것, 소유하는 것, 심리적인 것을 표상하는 사유 영역을 형성한다. 유전자 자체는 그저 함께 연결되어 있는 화합 물질들에 불과한데 어떻게 마음속에 개념을 건립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안다는 것은 진정으로 무엇일까? 무엇을 안다는 것은 일단 우리가 그것을 인식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인식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시각이나 청각으로 인해서 그러한 인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분명히 앎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다. 그 단계를 넘어서야 진정으로 앎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 대상에 대한 개념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히 학습해 나가는 과정에서 알 수 있게 된다.
“인간 사유의 기원은 무엇일까? 오늘날 우리는 우리 인간과 아주 가까운 친척 종들이 분화되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만약 인간이 처음부터 기억을 관리하는 능력에서 중대한 발전을 이루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한다면, 더 많은 기억으로부터 유리함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진화는 특유하게 다음과 같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해야만 했다. 우선 더욱 광범위한 행위 기구들을 관리하는 능력이 향상되었고, 이렇게 더 많은 기구들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들을 갖추게 되자 더 큰 용량의 두뇌를 지니게 된 자들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자연선택이 이루어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뇌의 용량이 우리의 생각의 능력을 결정한다. 이러한 뇌의 용량의 인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어쩌면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위대한 선물인지 모른다. 그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 그리고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를 만드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이다.
우리가 마음이나 생각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한의 능력을 활용하여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인간의 위대함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