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속에도 소망을

by 지나온 시간들

불행의 끝은 어디일까?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불행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을까?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의 자살을 한 어머니의 죽음을 아들이 회상하면서 인간의 내적 성장 과정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정치는 무엇이었나? 그건 단어였을 뿐 어떤 개념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정치와 관련된 모든 것이 무언가를 포착할 수 있는 현실과 관계없는 표어가 되어버렸고, 지금까지 사용되던 이미지들도 그림으로는 나타나도 인간적인 내용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즉 억압은 사슬이나 장화 굽으로, 자유는 산의 정상으로, 경제 체제는 유유히 연기를 내뿜는 공장의 굴뚝이나 하루의 일을 끝내고 피는 파이프 담배로, 사회체제는 등급으로 표현되었다.”


사회 현실에 대해 눈을 떠야 진정한 내적 성장이 가능하다. 학교 교과서에서만 배워왔던 것들이 현실과 너무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어린 나이에 충격이지만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해 나간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그녀의 첫사랑도 있었다. 독일 나치 당원으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은행원이었지만 전쟁 중에는 경리 담당 장교로 복무했으며 약간 특별한 데가 있는 남자였다. 그녀는 곧 임신하게 되었다. 그는 유부남이었지만 그녀는 그를 매우 사랑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그녀에겐 상관이 없었다.”


사랑을 경험함으로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어린아이 같았던 마음이 성인의 마음을 성장한다. 사랑의 아픔 또한 그의 내적 성장의 영양분이 된다.


“어쨌든 그녀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될 수도 없었다. 그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어서 그녀에게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녀는 나이 서른이 안 되었을 때도 벌서 ‘그 당시에는’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 이제 생활 형편이 너무도 어려워져 그녀는 처음으로 이성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성에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운명을 거슬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 삶의 진정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이다. 시간이 지나고 많은 것을 겪으며 내면의 성장이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녀는 모든 책이 자신의 삶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고 독서를 하면서 생기를 얻었다. 독서를 함으로써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감싼 껍데기로부터 벗어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책을 읽을 때마다 그녀는 더욱더 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우리는 무언가를 알아야 우리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최대한 많이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르면 항상 그 자리일 뿐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관대해졌고 그가 변명을 늘어놓아도 그대로 놔두었다. 심하게 고개를 흔들어서 첫마디부터 남편의 말을 잘라버려 그가 말을 꿀꺽 삼키게 하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연민을 느꼈고 그 순수한 연민 때문에 종종 아주 무기력해졌다. 자신이 겪는 과거의 절망감을 아주 뚜렷하게 보여주는 어떤 사물, 예를 들어 에나멜 칠이 벗겨진 세숫대야나 우유가 늘 흘러넘쳐 새까맣게 되는 아주 작은 전기냄비 같은 것들이 있는 곳에서만 상대방을 상기한다는 점에 대해 상대방이 전혀 괴로워하지 않아서 생기는 연민 말이다.”


내면으로 성장할수록 마음이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삶이 무언가를 알게 되면서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점점 더 성숙해지면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불행은 어느 정도까지기를 바란다. 소망을 가지지 못할 정도의 불행이라면 그 사람의 인생은 정말 너무 가련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에게 불행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불행을 버티어내고 극복해서 행복으로 만들려는 소망이 필요하다. 암흑 같은 시대에서도 그러한 것을 노력하여 성공한 사람은 너무나 많다. 바로 그러한 것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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