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시인이었던 예이츠는 1912년 우연히 인도의 어느 무명작가가 쓴 시의 원고를 보고 감동하여 이를 출판사에 추천하여 출간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시집의 서문은 예이츠가 직접 썼는데, 이것이 바로 “기탄잘리”였다.
이 시집의 저자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였는데, 그는 1861년 인도에서 캘커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학교 성적도 바닥이었으며 12세 때 히말라야의 벵골 여행을 다녀온 후 14세에 학교를 포기한다. 그리고 그는 시를 쓰며 지내다 17세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1년 반도 못되어 다시 학교를 떠난다. 귀국 후 그는 자신의 길이 문학에 있음을 알고 시와 소설을 쓰는 데만 몰두한다.
22세인 1883년 결혼을 하였는데 그의 아내는 나이가 10살밖에 안 된 소녀 바바타리니였다. 타고르는 그녀와의 사이에 자녀 5명을 낳았고, 문학 작품을 하며 농민 공동체 일에 힘쓰다 아내와 부친 아들과 딸을 연이어 잃는 불행을 겪는다. 게다가 재정적인 문제가 심화되면서 공동체 사업과 그때까지 나온 저서의 판권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이때 그는 자기 내면의 아픔을 벵골어로 시를 쓰게 되었고, 이것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 바로 기탄잘리였다. 1913년 노벨상 위원회는 “시적 사상과 완성된 솜씨와 함께 서구 문학의 일부분인 영어로 표현된, 그의 깊게 민감하고 신선하며 아름다운 운문”이라는 평가와 함께 타고르에게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
<기탄잘리>
1.
당신은 나를 무한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기쁨입니다.
이 부서지기 쉬운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워,
언제나 새로운 생명으로 채웁니다.
이 작은 갈대 피리를
언덕과 골짜기로 가지고 다니며 당신은
그것에 끝없이 새로운 곡조를 불어넣습니다.
당신의 불멸의 손길이 닿으면
내 작은 가슴은 기쁨에 넘쳐 한계를 잊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들을 외칩니다.
당신이 주는 무한한 선물을
나는 이 작은 두 손으로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
영원의 시간이 흘러도 당신은 여전히 채워 주고 있으며,
내게는 아직 채울 자리가 남아있습니다.
91.
오오, 생애 최후의 마무리인 죽음이여
나의 죽음이여
여기 다가와 내게 속삭여주오!
날마다 나는 그대 오기를 기다렸소.
그대 있기에
내 인생의 기쁨과 아픔을 견디어 왔소.
나의 존재,
나의 소유
나의 희망과 나의 사랑 그 모든 것은
언제나 고요한 깊이로 죽음 향하여 흘러갔소.
그대가 마지막 한 번의 눈길을 보내오면
내 생명은 영원히 그대 것이 될 것이오.
꽃은 엮어지고
신랑을 위한 화환의 준비는 되었소.
혼례가 끝나면 신부는 제 집 떠나
인적 없는 밤
다만 홀로 신랑 집으로 갈 것이오.
101.
한평생 나는 노래하며 님을 찾아왔습니다.
문전에서 문전으로 날 인도한 것은 노래였으며
또 그 노래로 내 세계를 찾아
거기 손길이 닿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껏 배운 것은
모두 나의 노래가 가르쳐준 것입니다.
노래는 나를 비밀의 오솔길로 이끌어주고
내 마음의 지평선 위에
많은 별을 가져다 보여주었습니다.
내 노래는 온종일
기쁨과 고통의 나라의 신비로 날 인도하고
기어이 내 나그네 길 끝나고 해 저물 때
어느 궁전의 문전으로 끝내 나를 끌려온 것입니까?
103.
나의 님이시여
다만 일심으로 님께 귀의하여
내 모든 감각을 펼쳐
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이 세상에 닿게 하소서.
아직 다 내리지 않은 소나기를 머금고
옅게 내려와 걸려 있는 7월의 비구름이듯
님의 문전에 내 마음 모든 것 바치게 하소서.
모든 내 노래의
그 다양한 선율도 함께
단 한 줄기 흐름으로 모아
침묵의 바다로 흐르게 하소서
고향 그리워 밤낮의 가림 없이
산속 옛 둥지로 날아가는 학의 무리처럼
님께 인사드리고
내 온갖 생명 바쳐
영원한 고향으로 배 떠나게 하소서.
기탄잘리라는 것은 신에게 바치는 송가라는 뜻이다. 타고르는 이 시집에서 인간과 신과의 관계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마음을 빌려 연작시의 형태로 표현하였다.
이 시집에서 사용되는 영어 단어인 “Thou, Thy, Thee”들은 ‘님’이란 뜻이며 나의 몸을 정결하게 하고 나의 악함을 씻어내어 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완성하겠다는 내용이다.
타고르의 시에는 그의 개인적인 삶의 고통이 다분히 스며들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딸과 막내아들의 죽음을 그는 감당하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아픔이 시로 승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작시, 작곡한 ‘자나 가나 마나(Jana Gana Mana)’는 인도의 국가가 되었다. 오늘날 그는 간디와 더불어 인도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타고르는 우리나라가 인도와 같은 운명이었던 피지배 국가였기에 그의 아픔을 너무나 잘 알았고 최남선 등 우리나라의 작가들과의 인연도 있어 한국에 대한 시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