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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테르나크는 왜 노벨 문학상을 거부했을까?

by 지나온 시간들

1957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를 완성하였으나 당시 소련 내에서의 발표가 허락되지 않아, 이탈리아에서 출판된다. 이듬해인 1958년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결정되자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러시아 작가 동맹에서 제명당한다. 이에 파스테르나크는 당시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러시아를 떠나는 것은 죽음과 같다. 부디 엄한 조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탄원을 하고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한다. 이에 소련 공산당은 그를 국외 추방만은 면하게 해 준다. 이 일이 있은 후 1년 반이 지나 파스테르나크는 모스크바 교외의 작가촌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한다.


1890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14년 첫 번째 시집 <구름 속의 쌍둥이>를 출간한다. 그는 <닥터 지바고>로 유명하지만, 그가 쓴 장편소설은 이 한 편 뿐이고 평생을 시인으로 살았다. 1920년대 중반부터 그의 시는 서사시의 경향을 띠기도 하였지만, 서정성 있는 작품 또한 많이 남겼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정치적 비판이 심해지자 그는 작품 활동을 중단한다. 스탈린이 죽은 후 그는 다시 창작에 몰두했고 이때 쓴 작품이 바로 <닥터 지바고>이다.


<닥터 지바고>의 시대적 배경은 1903년부터 1929년까지이다. 러시아의 차르 체제의 붕괴부터 볼셰비키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한 러시아 지식인이 겪는 운명과 비극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1914년부터 시작된 세계 1차 대전은 4년간 이어졌고, 1917년 2월 러시아의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무장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러시아 군대는 연속하여 전선에서 패배했고, 수백만 명의 러시아 군인들이 죽어 나갔다. 러시아 경제 또한 완전히 붕괴 직전에 이르게 되어 군인들에게 먹을 것조차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결국 1917년 2월 러시아 시민들은 러시아 정부에 식량을 요구하며 시위를 일으키게 되고, 군부마저 이에 가담하게 된다. 이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갔고 이에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는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의 시대는 끝이 난다. 이것이 2월 혁명이다.


1917년 4월 레닌이 귀국한 후 무장 혁명 세력을 직접 장악한다. 그해 10월 레닌은 트로츠키를 앞세워 독일의 위협으로부터 수도와 혁명을 방위한다는 목적으로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하고 무장 혁명의 실행을 단행한다. 10월 24일 레닌은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긴급하게 편지를 보내 ‘행동의 연기는 곧 죽음’이라고 말하며 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그날 밤 즉시 군사 행동이 일어났으며 국가 모든 기반 시설이 혁명군에 의해 장악된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 10월 혁명,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다. 10월 25일 밤 제2차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가 열렸고 소비에트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했음을 선포한다. 볼셰비키 혁명의 완성이었다.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유리 지바고는 간접적으로는 러시아 혁명에 참여하지만 단지 아웃사이더로 행동하면서 혁명에 직접적인 참여는 거부한다. 그가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러시아의 한 지성인으로서 혁명이나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간적 삶과 생명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마음은 ‘라라’라는 한 여인과의 사랑과도 관계된다. 그에게는 사랑이란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에게 있어 이러한 사랑은 전쟁과 피의 혁명이라는 사회적 혼란과는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그의 내면적 성숙은 그에게 좌절과 환멸만 남겨주게 된다. 그는 진정한 사랑을 이루지도 못했고, 사회적 성공도 얻지 못한 채 결국 고독하게 죽게 된다.

소설에서 러시아의 한 노동자는 혁명 과정 중에서 지바고에게 시대의 흐름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바고는 혁명 완성을 위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에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야수성이 공포와 난폭한 힘을 통해 제어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이상은 회초리를 휘두르는 서커스단의 조련자이지 예수 그리스도는 아닐 것이다.”


닥터 지바고는 인간은 이데올로기나 정치 목적을 위한 희생양이 아니며 오직 선을 통해서만 최고의 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보편적 정의라는 혁명의 꿈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이 개인의 모든 것까지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은 인간적 삶이 아니라고 하면서 저항한다. 즉 그는 개인적 자아의 가치를 믿었기에 획일적 혁명 이념에 반대했던 것이다. 닥터 지바고는 이렇게 말한다.

“틀에 박힌다는 것은 인간의 최후이며 인간에 대한 사형선고와 같다.”


많은 사람이 이상 사회를 꿈꾼다. 급진적인 혁명가들은 인간 사회라는 현실에서 천국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 자체가 불완전하기에 그러한 것은 글자 그대로 “꿈”일 뿐이다. 보다 나은 사회는 가능할지 모르나 완전한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닥터 지바고가 공산주의를 반대한 이유는 강압과 억제,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의 그늘에 가려진 인간성의 상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스탈린 개인숭배와 공산주의 체제를 찬양하는 가운데 파스테르나크는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말려들지 않은 채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자신의 신념과 자유를 위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비록 공산주의자들은 파스테르나크를 <시대에 맞지 않고 민중과 유리된 퇴폐적인 형식주의자>라고 비판하였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이것이 그의 문학에 녹아들어 <닥터 지바고>라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으며 노벨 문학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본인의 신념과 다른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정치 체제 속에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기에 노벨 문학상을 거부하고 자신의 태어났던 고향에서 조용히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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