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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운명이다

by 지나온 시간들

192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케르테스 임레는 15세 때 나치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난다. 1975년 나치 수용소의 체험을 다룬 소설 <운명>을 출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200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소설 <운명>에서는 15살 소년인 죄르지가 1944년부터 강제 수용소에서 있었던 1년 동안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죄르지는 수용소에서 억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자신의 목숨을 지켜가면 생존해 나가는 것에 몰두한다. 그곳의 엄격한 규칙에 따라 머리를 짧게 자르고, 몸에 맞지 않는 죄수복을 입고 그저 주는 대로 아무 음식이나 먹는다. 아우슈비츠에서 부헨발트 그리고 짜이츠로 이송되면서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치 운명이 결정된 것처럼 그는 이동해야 했다.


고된 강제 수용소에서 그는 살아남는 법을 나름대로 터득해 나간다.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의지를 굳건하게 간직한 채, 살아 있을 수 있는 것만도 행복하게 생각하며 언젠간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는 모든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낸다.


“만일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 이 말은 나 자신이 운명이라는 뜻이다.”


죄르지에게는 매 순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환경의 폭압에 무릎을 꿇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비록 어린 소년이었지만 미리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이 운명이라고 굳게 믿는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뭔가 새로운 것을, 그것도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시작한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체험했다. 당분간은 착실한 수감자가 되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미래의 일이었다. 이것이 대체로 내 기본 입장이었고, 나는 그것에 맞추어 처신을 했다.”


그는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도 묻지 않은 채 그저 눈앞에 닥친 일을 하면 오늘에만 집중을 한다. 오늘을 이겨내면 또 다른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결국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강제 수용소를 나오게 된다. 그는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살아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모든 관점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나는 이어질 수 없는 나의 실존을 계속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완전히 자연스럽게 살아가지 못하는 부조리는 없다. 이제 내가 가게 될 길 위에 피할 수 없는 덫처럼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아우슈비츠 굴뚝에서조차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내게 악과 끔찍한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내게는 이런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도 말이다. 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다음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말할 것이다.”


내 주위의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극복하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러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은 오로지 나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나의 운명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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