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미 베네수엘라 근처인 트리니다드 섬에서 인도계 후손으로 태어난 나이폴은 18세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한 후 기자 생활을 했다. 23세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1957년 <미겔 스트리트>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이후 많은 작품 활동을 하며 2001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미겔 스트리트(Miguel street)”는 트리니다드 섬의 수도인 포트 오브 스페인에서 하류 계층이 사는 지역으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식민지 사회의 하류 지역에 존재하는 도덕적인 퇴폐와 무기력 그리고 비능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트리니다드 섬은 17세기에 스페인과 영국의 통치를 받으며 처음엔 아프리카 노예를 수입하다가 19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정착민을 받아 이주시켰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계의 흑인과 인도계의 아시아인들이 주민의 주축을 이루고 있어서 흔히 말하는 ‘공동사회’가 불가능했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식민지로서 민족주의나 반제국주의 성향도 없고 전통문화나 의식 같은 것도 없다. 따라서 사회적 공익보다는 개인적 이익을 우선하는 경향이 심했다. 사회적 타락 현상은 극심하여 사회적 비리와 절도, 폭력, 중혼, 뇌물 수수 같은 일들이 만연했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존엄성이 가능할 것일까? 2차 대전이 끝나고 1962년 인접한 토바고 섬과 함께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으로 독립한다.
트리니다드에는 어떤 준칙도 없었다. 그저 자기가 맘대로 말하고 입고 먹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자유가 아닌 방종으로 가득한 사회였다.
“에드워드는 미국인들에게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다. 그는 미국인식으로 옷을 차려입기 시작했고, 껌을 씹기 시작했으며, 미국식 악센트로 말하려고 했다. 우리는 일요일이 아닌 날에는 그를 잘 볼 수 없었지만 만날 때마다 그는 우리에게 열등감을 주었다.”
미겔 스트리트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전통이 존재하지 않기에 백인들의 가치를 비판 없이 수용하였고, 이로 인해 자신들은 백인들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음을 알고 자기 자신들을 멸시하기조차 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은 전혀 없고 열등감만 가득한 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및 헬레니즘의 전통이야말로 백인들의 백인됨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거니와, 바로 이 전통을 추구함에 있어 주민들은 자기네의 과거를 부정하고 자기 자신을 멸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검은 피부를 희게 만들 수 있는 양 덤비고 있었던 셈이다. 집단 수용소에 오래 갇혀 있다 보면 사람들이 참으로 자기네가 죄를 지은 것으로 믿게 된다는 말이 있다. 기독교 및 헬레니즘의 전통을 추종하는 가운데 서인도제도 주민들은 어느새 자기의 검은 피부를 죄악시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네가 갈망하던 백인 문화가 지닌 여러 가지 편견의 타당성을 한 번도 진지하게 의심해 보지 않았다.”
트리니다드 사람들은 오래도록 식민지 생활을 해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정신적으로도 노예였다.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해 나가려거나 자기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 자기들의 미래를 위해 더욱 보람 있는 생활을 하려는 열정은 전무했다.
이 소설을 쓴 나이폴도 자신이 트리니다드를 떠나고 나서야 그곳의 참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 속에 함께 묻혀 살다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를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기는 마련이다. 그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한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과 주위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거리를 둔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그곳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보다 나은 자아와 사회를 위해서는 현실을 가장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