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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Dec 16. 2021

바그너는 왜 걸림음을 사용했을까?

걸림음이란 한 화음에서 다음 화음으로 넘어갈 때, 한 화음 중의 어느 음이 다음 화음에까지 남아 불협화 상태를 일으킬 때 이 음을 걸림음이라고 한다. 만약 두 개나 세 개의 음이 동시에 불협화를 일으키면 이를 계류화음이라고 한다. 


  이러한 걸림음이 없으면 불협화음이 존재하지 않기에 음악의 흐름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즉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는 걸림음 없는 화음의 흐름이 편하고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는 걸림음을 상당히 흔하게 사용한다. 이는 작곡가의 의도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다. 유명한 작곡가가 화성악에서 당연시하는 물 흐르는 듯한 화음을 마다하고 불협화음을 사용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즉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이다. 


  1813년 태어난 바그너는 그보다 25살 나이가 많은 철학자 쇼펜하우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평상시 쇼펜하우어는 정치 같은 것은 사소한 일로 생각했지만, 예술 특히 음악은 인간의 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음악이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그는 예술철학에 관심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쓰던 중 몸이 많이 아팠는데 그는 건강이 회복되는 것을 기다리던 중 자신이 좋아했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거듭 읽었다. 그것이 내면화되어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충족되지 않는 우리들의 갈망과 욕망이 있을 뿐 우리가 원하는 완전한 성취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음악으로 말한다면 우리의 삶은 불협화음으로 가득할 뿐이며 마음 편하고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수 있는 아름다운 화음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가사에도 보면 이러한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표면화되어 있기도 하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졸데는 왕의 부인이었다. 트리스탄은 왕이 가장 믿는 신하였다.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런데 둘은 너무나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사랑이라도 마음껏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그 흔한 사랑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었다. 편하고 아름다운 화음처럼 살아갈 수 있는 순간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왕은 두 사람의 밀회를 알아내기 위해 함정을 파고 그들은 왕의 함정에 걸려들게 되기도 한다. 살아가는 곳곳이 모두 불협화음 밖에 없다. 그러다 결국 트리스탄은 병이 들어 이졸데를 기다리며 죽음을 맞이하고 이졸데는 트리스탄에게 달려오나 그는 이미 죽고 난 후였다. 이졸데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트리스탄이 죽자 결국 자신도 죽고 만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둘이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그렇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루어질 듯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그것이 바그너가 걸림음을 사용했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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